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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재명의 일생, 논란

by @#$*&! 2020.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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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일생, 논란

소년공 시절


빈농 노름 중독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초졸 소년공으로 온갖 산업재해를 입고도 보상도 못받고, 검정고시로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장학금 하나 믿고 뼈를 깎는 수험 생활 끝에 변호사가 됐다. 정치인이 돼서도 한 번에 당선되는 법이 없었다. 3수 만에 당선됐지만, 2017년에 사망한 셋째 형이 동생의 공직을 빙자해 알선 수재를 하려다 까이고 원수가 됐다. 여동생은 청소부 일을 하다 과로로 죽었다


1963년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4] 원래는 5남 4녀 중 일곱째였으나, 누나 둘이 요절하면서 다섯째가 됐다.

그의 부친 이경희(李敬熙)는 경북 영양군 사람으로 대구 청구대학교를 중퇴하고 순경, 교사 등을 하다 노름에 빠졌고, 이후 탄광관리자 등을 전전하다가 안동군 예안면 산골 '지통마'에서 농사를 지었었다. 이 때 쯤 이재명이 태어났다. 그의 부친에 대한 증언으로는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 '산골 마을 동장을 맡았다' 등이 있다. 하지만 그나마 조그만 땅뙈기까지 노름에 날리고 1976년 하산해서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시장통에서 청소부 일을 했다.

어머니는 대구에서 시집와서 온갖 고생을 다 했으며, 성남에 내려와선 시장통 공중 변소 앞에 앉아 하루 종일 요금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 가난해 남들 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 이재명은 성남 상대원 공단 소년공으로서 괴로운 삶을 살았다. 어머니는 그의 생일도 잊어버렸고, 점쟁이에게 물어(...) 생일 날짜를 정했다고 한다. 이것도 학교 등록을 하려면 생년월일을 기입해야 되니까 임시로 만든것이다.

아직 안동 산골 살던 시절, 초등학교는 의무 교육이기 때문에 다녔지만 걸어서 2시간이 걸리다 보니 진짜 못갈 사정이 생기던지, 본인이 사정을 만들던지 해서 결석일이 많았다고 한다. 막연하게 교사를 꿈꿨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성남시로 이사를 왔고, 어린 나이에 공장일을 나가야 했다.

첫 직장은 염산과 황동을 다루는 목걸이 공장이었고, 2번째 직장은 붕산으로 땜을 하는 공장이었는데 사장의 야반도주로 월급을 떼였다. 3번째 공장에서는 고무 조각이 손가락에 박혔는데 파편이 아직 박혀 있다.

4번째 직장 땐 날카로운 함석에 찔려 흉터가 많다. 작업반장의 구타 때문에 난청과 부분적 청각 장애도 있다.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글러브 공장에서 프레스 기에 왼쪽 팔이 껴 장애 6급 판정을 받았으나, 당시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해 본격적인 치료는 받지 않았다. 본인 피셜로는 어린 마음에 이런 걸로 아파하면 뭐라 할까봐 그랬다고. 제2국민역(5급) 판정으로 병역이 면제됐다. 병무청 군의관이 엑스레이를 보면서 "이 새끼 이거 개판이네" 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고. 상처가 됐던지 공석 사석에서 곧잘 언급한다.

스티브 유에 대해 이재명 시장이 공격하자, 스티브가 '너도 안갔다왔으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맞디스를 한 적이 있었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왜 군에 가지 못했는지에 대해 아픈 과거를 털어놓으면서, 왼쪽 손목 뼈가 없어 왼손이 굳었다라고 받아쳤다. 아직도 차려 포즈를 싫어하고 굽은 왼손으로만 마이크를 잡는다. 

당시 작업반장이 고졸인 것을 알고 '나도 고졸이 되면 되나보다'라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 락카실을 자원했는데, 락카질은 먼지 하나 없는 밀폐 구역을 만들어 작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근무시간에조차 허락없이 열리지 않는 이중문 안쪽에서 혼자 작업을 했기 때문에, 할당량을 서둘러 끝낸 뒤 숨어 몰래 책을 봤다고 한다. 벤젠과 아세톤 냄새를 너무 맡아 후각을 상실했으며 코가 비뚤어졌다고. 공부를 가족들이 탐탁치 않아 했지만 어차피 제 돈으로 고학하는 거라 면전에서 막진 않았다고 한다.

우울증과 장애로 너무 힘든 나머지 17살 때 자살을 시도했다. 첫 시도 때는 연탄불이 저절로 꺼졌고, 2번째 때는 둘째 형인 이재영이 구해줬으며, 우울증에 시달리던 마지막 시도땐 다량의 수면제를 구하러 갔다가 눈치 챈 의사가 소화제를 대신 줘 죽지 못했다.

이 무렵 어머니는 낮에는 일을 하시다 밤에는 막걸리 장사를 하셨는데 손님 중 한 명이 안주를 나눠 주더니 "귀가 참 잘 생겼네" 라며 복귀라고 뭘 해도 잘 될 놈이라 칭찬하였다. 때마침 중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였기 때문에 그때부터 우울했던 것이 점점 상쇄되고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2년 중앙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언감생심 대학 진학이 가능했던 건 순전히 장학금과 학교에서 주는 생활비 지원 덕분이었다. 당시 공장 월급이 8만 원 정도였는데 입학금, 등록금 면제는 물론 매월 20만 원 가량 용돈을 지원받는 조건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사준 제복을 입고 대학교에 갔다. 이미 70년대 중반 대학교 제복은 사라진 상태였다. 가족들도 그냥 대학생은 제복을 으례 입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가 2학년 때인 83년엔 중고등학교조차 교복이 없어졌다.

본인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중고등학교를 못 다녀봐서 그런지 오히려 좋았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어머니가 제복을 사주실때도 가만히 있었다고. 본인도 알고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알고도 가만 있었다는 투긴 하다. 어쨌든 입학식날 제복을 입은 사람은 자기 뿐이였다고 한다.

당시 공장에서 일하던 셋째 형 이재선에게 대입 시험을 치르게 했다. 중대에서 매달 주는 용돈을 쪼개 주겠다고 형과 가족들을 설득했다고. 이재선은 최상위 등급의 성적을 맞았던 것 같은데 4년 등록금과 생활보조금을 받는 건대로 진학해 대한민국 공인회계사가 됐다. 서울대 욕심을 내자 이재명이 불같이 화를 냈었다고

 

인권 변호사 시절


선배들에게 사법시험에 관해 들었고, 특히 장애인이라 취업이 힘든 자신에게 고시공부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사법시험에 도전한다. 사법고시에 매진하긴 했지만 오며가며 학생운동 구호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도 알게 되었고, 세상이 자신만 잘 살아야 되는 것은 아니였다는 것을 이때 깨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6년 사법시험에 붙기 직전 청소부였던 아버지 이경희가 위암으로 위독해 입원했는데, 문병을 가니 아버지가 친구들을 모아놓고 "그놈을 내가 거길(법대를) 보냈어"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아들이 공부한다고 밀어주기는커녕 모든 가난의 원인이었던 아버지였지만, 이 마당에 구태여 뭐라 하기도 그래서 그저 맞다고 했다고 밝혔다.

1986년 10월 23일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급히 병세가 나빠져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 귀에 합격했다고 보고를 했지만 이미 의식이 없었다. 생일날 합격 통보를 받는 겹경사였지만 기뻐할 새도 없이 며칠 후 부친상을 당했다.

1988년 사법연수원생 시절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에 감명받았다. 굳이 판검사 안해도 먹고 살 수 있구나란 생각, 그리고 인권변호사로서 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군부독재정권에 반대하는 뜻으로 연수원생 신분에 무려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 반대 연판장을 돌렸다고. 잘릴 각오로 썼는데 잘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웃었다.

어쨌든 이후 자신은 바로 변호사가 될 것이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고, 결국 변호사 겸 성남 지역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게 된다. 사법고시에 붙으면 검사 판사를 누구든 먼저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의아해 하는 모친에게는 성적이 안 좋아서 변호사를 하는 것이라 둘러댔다고 한다.

없는 돈에 바로 개업을 했는데 초반에는 돈을 벌지 못했다. 노동운동이나 인권과 관련된 변호 활동을 위주로 했다는데, 다만 이 시기 이재명의 정확한 공적인 행적은 정보가 별로 없다. 황창화의 변호를 맡았다가 패소한 사건 정도가 구글링이 가능한 정도. 

문민정부 집권 이후 고문이나 시위 강제진압들이 사라지면서 1995년 본격적으로 시민운동가가 된다.



2002년 분당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 당시 이재명이 본격적으로 이에 대해 이의제기와 문제제기를 했는데, 당시 관련 인물들은 20억 상당의 지역신문사를 보장해줄테니 문제제기를 자제하라고 회유를 하였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재명은 "양심값은 5천억"이라고 농담을 던졌는데 이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들이 이재명과 모종의 거래를 하다 실패하였다는 식으로 말하며 몸값을 높여 당황하였다고 회고하였다. 그렇게 되며 협박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협박을 받을 당시 실제로 두려움을 느껴 총포소지허가증를 받아 가스총을 소지하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협박에도 회유가 되지 않자 패륜아, 악덕 변호사 등의 이미지를 붙여 그를 공격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떨어져 나갔다고.

2004년, 이재명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사건이 있는데 당시 성남시민들이 공공 의료원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국내 최초로 2만명이 주민 발의 조례를 한 일이 있었다. 당시 주민이 시 의회에 장정 1년을 준비한 해당 조례를 넘기자 47초 만에 날치기로 심의 자체가 거부 되었었다. 당시 이재명은 주민 대표 중 한명이였는데 이 당시 성남시민들과 의회에서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회의 속개를 진행하고 의회를 나간 의원들을 붙잡으러 다니다 30여명이 같이 연행되며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공용물건손상죄를 선고하였다. 당시 대표 주민이였던 임모씨에겐 구속 영장을 발부하였으나 기각되었다.

당시 이재명 시장이 흘린 눈물이 현재도 자주 화제가 되는데, 이재명 시장은 부결까지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심의 자체가 거부 당하자 마음 속에서 울분과 허망감이 나와 울음을 흘렸던 것이라고 회고하였다. 이후 교회 지하실에서 지인과 도시락을 먹으며  울다가 시장이 돼서 시립의료원을 만들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본래는 정치에 나오면 패가망신한다는 생각에 하지 않았었다고.

여담이지만 이재명 시장은 생각보다 자주 눈물을 흘리는데, 이 때문에 인간스럽다는 평과 더불어   외강내유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다만 이 시절에 음주운전이나 검사 사칭,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처벌을 받았으며, 이는 이재명의 정계 인생에 있어 악영향을 미치는 부분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재명은 당시 범죄 기록을 밝히고 있으며, 후일 이재명을 법무부 장관 등 임명직으로 검찰개혁을 시켜야 한단 여론이 있던 시기엔, 임명직보단 현장에 있고 싶단 대외적인 입장 외에도 이런 논란들 때문에 청문회 통과하기 어려워 안한단 너스레를 떠는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정치입문


성남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6년 지방선거를 즈음하여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여 단수 공천으로 성남시장 후보로 출마한다. 결과는 전직 시장인 한나라당 이대엽 후보에 밀려 낙선.

이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고흥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경기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해 51.2%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되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도 55.1%의 득표율을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 심지어 부자동네라 서울의 강남권에도 비견되는 보수정당 강세지역인 분당구에서도 승리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다른 한편으로 계파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며 자신이 시장으로 있는 성남시의 시민들과 SNS 등을 이용하여 활발하게 소통하고 정치적인 이슈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편이다. 2010년대 중반 들어선 문재인과도 자주 만나는 등, 정치적인 행보를 넓히고 있는 중이다. 이재명이 2016년 10월 즈음에 검찰에 고발되었을 때 문재인이 자신의 SNS를 통해 직접 이재명을 응원하기도 하였다.

정치 생활 초기엔 그 유명한 정동영의 지지자. 그것도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일명 정통, 정통들)의 대표로 선발되어 탄돌이로 활동하였으며, 그 모습이 뉴스에 나오거나 인터뷰로 다뤄지기도 했다.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박스떼기 논란


2015년 말에 일어난 국민의당 창당 때처럼 그 당시에도 열린우리당에서 김한길, 천정배, 이종걸 등이 탈당해서 신당을 추진했다. 이후 열린우리당은 해체되고 대통합민주신당이 된다.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경선 선거인단에 노무현 대통령의 명의까지 도용되어 큰 논란이 일어났다. 당연히 노 대통령이 선거인단에 들어간 게 아니라 정동영을 지지했던 정인훈 당시 종로구 구의원이 벌인 행위였다. 그래서 정동영 측에선 이렇게 선거인단 명부를 박스채로 여기저기서 떼서 실어나르다가 손학규 후보 측에 의해 적발되어 '박스떼기 경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을 벌인 정인훈은 명의도용의 이유를 경선의 흥행을 위해서라고 했으며, 사안에 비해서 벌금이 적은 이유는 투표에 사용하지 않은 점(경선 전에 발각됐으므로), 상업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점, 도용당한 사람들이 처벌을 물려 줄 것을 부탁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10월 2일. 정봉주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부산에서 있던 차떼기 정황을 포착하고 이를 급습했는데, 당시 정봉주의 기자회견을 보면 급습한 인원에 대해 이상호 당시 정동영 대선후보 선대위 가족행복위 집행위원장이 욕설을 하고 급습 인원이 두들겨 맞는 등 폭력행위를 언급했으며, 이 급습을 통해 차떼기 지령서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MBN 뉴스 (이때 손학규 캠프 소속이었던 정봉주 당시 의원과 정동영 캠프 소속이었던 이재명 당시 변호사가 말씨름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모집된 선거인단의 전화번호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돌린 후 정동영 후보가 아닌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하는 선거인단은 배제시키고 정동영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사람들에겐 직접 콜센터를 돌려 민주당 선거인단으로 선정되셨다며 경선 참여 안내 독려를 했다고 한명숙 측에서 주장했다.

이후 손학규, 이해찬측의 부정경선 의혹과 이해찬 후보측의 선거인단 카풀공지가 공개되면서 경선은 더욱 혼돈속으로 빠져들었다.

노웅래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손학규 후보에 대해 “손학규 후보 캠프는 지난 9월 7일부터 10일까지 3박4일동안 경기도 군포 지역 한 호텔에 방을 얻어놓고 36명이 선거인단 대리접수 작업을 불법으로 했다”며 “이들은 그 대가로 일당 5만원을 받았고 직접 돈을 받은 사람의 제보를 접수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손학규 후보의 친구인 D건설 K모 부회장이 회사 산하단체에 선거인단을 대리접수시키라는 내용의 문건을 팩스로 보냈다며 관련 문건을 공개하면서 “문건에는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어도 좋으니 부담 가질 필요 없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노웅래 의원은 9월 5일 충남도당 사무실에서 손 후보측 여성대리인이 무단으로 선거인단에 서명을 날인.위조해 접수하는 현장을 동영상으로 확보했다. 

이어 이해찬 후보측의 선거인단 카풀공지가 공개되면서 이 후보측에서 차떼기를 시도했던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고, 9월 17일 충남도당 사무실에서 이해찬 후보 대리인이 무단으로 선거인단 서명을 날인.위조해 접수하는 현장을 포착한 동영상이 확보되었고 이재정 통일부장관과 차의환 청와대 혁신관리수석, 이영범, 서규성 청와대 행정관 등이 본인 동의 없이 선거인단에 대리 접수된 사실이 공개되었다. 

이렇게 경선 초반 제기되어오던 조직동원 및 관권선거 의혹으로 10월 2일 경선 잠정 중단 사태까지 발생했다. 10월 9일부터 경선이 재개되며 손학규,이해찬 후보의 요청으로 지역투표가 일괄적으로 치뤄졌고, 정동영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시간이 지나 2010년대 들어, 예전 손학규 캠프에 섰던 정봉주 전 의원은 '정봉주의 전국구' 123회에서 당시 정동영을 지지하는 모임이었던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약칭 정통)'의 회장을 맡았던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이 일에 대한 얘기를 꺼내며 차떼기, 박스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재명 시장은 웃으며 '그거야 그때 잘못 한거지' 라고 대답하며 잘못된 일이었음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 반대파라는 의견

정동영을 따랐던 만큼 노무현의 반대파로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의 SNS를 통해 자신은 노무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반칙과 특권없는 세상, 다함께 행복한 세상 같은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존중하는 것을 본다면 자신은 친노 인사가 맞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은 노무현을 뛰어넘는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제2의 노무현이 아닌 이재명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사실 열린우리당에 입당 했었다는 것 외에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특기할 만한 인연이나 접점이 없고 성남시장을 거치며 대선후보로 떠오는 배경에서도 딱히 친노인사들의 지원을 받거나 한 것이 없기 때문에 친노인사로 분류하는 언론은 없다.

노무현을 존경한다는 건 선배 인권변호사이자 민주당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의미라고 해석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그 계통의 인물집단을 가리키는 친노로 볼 수 있는 인물은 확실히 아니다. 이 점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박원순도 인간적으로는 노무현 대통령과 상당한 유대감과 존경심을 갖고 있었으나, 정치적 의미에서는 친노가 아니기 때문. 다만, 이 시장이 노무현의 강연을 듣고 그 길로 사실상 현재까지 완성됐다고 자평하는 만큼, 이재명 지지자들은 이재명의 일방적이긴 주장이긴 하지만 넓은 의미에선 관련성이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성남시장


2010년, 전임자였던 한나라당 소속 이대엽 시장이 3,222억의 호화 시청사를 짓는 논란 등으로 성남시의 反한나라당 정서가 강할 때 기존 시정 방침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51.2%의 득표율을 얻어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시장이 된 직후 화제가 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시 재정 건전화에 착수했으며, 한편으로 공무원들의 매관매직 인사관행을 개선하였다.

이후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 재선에 도전하였으며 첫 당선 때보다 득표율이 3.9%p 더 올라 55.1%의 득표율을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 특기할 점은 이재명 시장이 진보 성향이 매우 뚜렷한 정치인인데 새누리당 강세 지역인 분당구에서도 득표율이 올랐다는 점. 첫 성남시장 선거에 당선됐을 때보다 무려 3.9%p가 증가하였다.

고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 시장실[24]을 저층, 즉 2층부의 앞쪽으로 옮겨간 것은 물론, 부정부패를 막겠다며 시장실에 CCTV를 설치하라고 직접 지시하고 시민들, 특히 어린이들의 방문을 받는 등 개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시립 의료원 건설, 노후 주택 리모델링 지원,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건설 추진 등 친서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25] 단지 부패 세력에 대한 강경 발언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경력 덕분에 문재인 전 당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함께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 언급될 정도로 그 지지도가 상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재명은 시장거래가격보다 비싼 '표준품셈'이라는 방식으로 건설 공사비를 산정하라는 중앙정부 지침에 반대하였다. 시장기준가격(표준시장단가)으로 자체발주한 성남시 서현도서관 건립공사에 369개 업체가 입찰했으며 성남시가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해 산정한 서현도서관 건립공사비는 총 207억원으로 표준품셈을 적용한 218억원 보다 약11억원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었다. 조달청은 성남시가 계산한 공사비가 너무 낮다며 4차례나 보완을 요구하는 등 표준품셈 산정을 강요했다. 하지만 결국 성남시는 정부의 비싼 공사비 산정을 거부하고 서현도서관 건립공사를 자체 발주했고 개찰을 완료했다.관련기사. 그리고 이재명은 10억 이상 공공발주 건설 사업에 대한 세부내역 정보를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 최초로 2016년 4월 말부터 공개하였다. 설계내역서, 도급내역서, 하도급내역서, 원하도급 대비표, 설계변경 내역 등의 정보를 공개하여 고질적인 공공 공사비 부풀리기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성남시장 퇴임 6일 전 기사에서 공약 이행률 94.1%를 기록하였다.


모라토리엄 종결


2010년,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성남시의 긴축 재정을 조정하여 지방채 발행, 회계 내 재산을 매각하는 등의 노력으로 마침내 2013년 모라토리엄 종결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그중 대부분은 판교신도시 전입금으로 충당되었다는 비판과 모라토리엄 선언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이다.

이는 전임 시장이 전용해서 갖다 쓴 판교특별회계 비용이 분명히 성남시가 다시 채워 놓아는 두어야 하는 돈이 맞기는 하지만 이는 급박한 채무가 아닌 장기적인 투자를 위해 적립해 두어야 하는 성격의 것으로, LH를 비롯한 어떤 채권자도 빚을 독촉한 곳은 없었기 때문에 모라토리움 선언을 굳이 하지는 않아도 되는 빚이었다는 의견이다.

복지정책


‘청년배당·무상 산후조리·무상교복 지원’의 3대 무상복지 사업을 진행하였다. 2016년 113억 원의 예산을 확보하여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의 청년 약 11,300여 명에게 분기별로 50만 원씩을 지급하였다. 그 밖에 중학교 신입생 약 8,900명에게 교복비를 지급하였으며, 성남시 신생아 약 9천여 명을 대상으로 무상 산후조리 지원사업도 실시하였다. 여담으로 무상교복 사업은 이웃 용인시에서 벤치마킹해갔는데 정찬민 용인시장이 자유한국당 소속임에도 이재명 시장과 매우 원만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본인의 복지 정책 확대에 대해 '그 돈은 다 어디서 구할 거냐'는 물음에 "쓸데없는 토목공사, 부정부패와 새는 세금을 통제하니까 예산이 정말로 많아지더라''이라는 말로 회답했다.

이러한 복지 정책과 성남시 부채 탕감을 위해 개발예산을 축소한 결과 약 2,700억 원의 가용 예산이 마련되었다. (일각에서는 주민세 인상을 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16년 현재도 4천 원을 유지 중이다.) 이는 2,100억 원인 서울과 1,500억 원인 용인을 웃도는 수준으로 지자체 중 가장 많은 수치이다. 가용 예산이 많으면 주민들의 요구에 맞게 정책을 변화할 수 있고 수요가 불안정한 복지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정책보다 복지정책을 중요시하는 성남과 서울이 이러한 가용예산을 높은 수준으로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헌데 2016년 4월에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러한 가용예산을 근거로 하면서 "성남시 등의 부자 지자체의 포퓰리즘을 줄여야 한다"며, 법인지방소득세의 50%를 도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이재명 시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즉각 반발했다.

실제로 지자체 지방세에 중앙정부의 교부세까지 모두 포함된 1인당 예산을 보면 성남시는 경기도 내에서 중간 정도로 결코 높은 편은 아니다. (과천시나 동두천시의 경우 1인당 예산이 성남시의 거의 2배에 육박한다.)

청년배당
2016년 1월, 특정 나이의 청년들에게 청년 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성남사랑상품권'을 지급했는데, 실시 이전부터 반대 여론이 강했던 정책을 강행한 데다# 이것을 상품권 현금깡으로 되파는 일이 일어나 논란이 일었다. 청년들의 사기 증진과 전통시장, 소매점의 매출을 올리는 등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었지만 현금화 이후 다른 식의 소비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정책이라는 논란이다. 이에 성남시는 해당 거래 글들을 삭제 요청하였다.

문제가 불거진 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성남사랑상품권이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되는 게시물들을 캡쳐한 글이 올라왔을 때부터인데, 해당 글 자체는 날짜가 드러나지 않아 신뢰성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1월 20일 이후 거래가 발생해 실제로 성남시청 비서실에서 거래 관련 글을 제재해달라는 글을 올린 바 있는 데다가, 한국경제 기자의 매입업체 취재에 따르면 1월 20일 이후에 현금거래된 상품권 중 청년배당으로 지급된 상품권이 있었으니 부작용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현금화 논란에 대해 이재명 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그렇다고 현금을 줄 수는 없지 않느냐, 어찌됐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고 했으며 해당 비판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일베저장소에 대해 강경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주었다. 성남사랑상품권은 청년 배당과 무관하게 이전부터 시행되어 온 만큼 화제가 되자 새삼 부작용이 주목받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지 정책은 대상을 확장할수록 부작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점은 미리 예측 가능한 만큼 유기명 카드화 등의 개선 정책을 미리 시행하였으면 문제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청년배당이 '소득'으로 책정되는 문제가 있어 기초생활보장 청년들이 상품권을 받을 시 생계금을 받지 못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또한 청년배당 시 제세공과금 20%와 지방세 2%를 물려야 하지 않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청년배당과 관련된 성남시의 취지가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현금화 가능성과 같은 문제와 더불어 이와 같은 부작용도 해결해야할 것이다. 일단 카드 형식으로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1월 27일 성남 지역 26개 상인회에서는 '청년들의 활로 모색이라는 정책의 본래 취지는 물론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정책'이라며 이 시장의 성남사랑상품권 정책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성남사랑 상품권은 기존의 지자체 발행 상품권과는 다르게 성남시내 거의 모든 상점(대형마트, 유흥업소 제외)에서 사용가능하다. 치킨집이나 약국 문방구 같은 곳도 가맹점으로 등록되어있고 택시비로도 낼 수 있다.

지방재정 개혁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지방재정개혁을 둘러싸고 2016년 5월 들어서 정부와 수원·화성·용인·과천·고양·성남 등 6개 지방자치단체 간에 본격적으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재명 시장이 그 동안 여러 문제로 정부와 각을 많이 세웠고 좋은 뜻으로나 나쁜 뜻으로나 위에 언급한 6개 지방자치단체장 중 가장 유명하기 때문에 이 문제 관련해서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있다.

먼저 문제가 된 지방재정 개편안에 관한 찬성.반대 입장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따르면 경기도에서 재정자립도가 높은 수원·화성·용인·과천·고양·성남 6개 지자체의 지방세를 가져다가 재정자립도가 낮은 경기도 내 다른 25개 지자체에 조정교부금으로 나눠주도록 되어 있다. 즉, 얼핏 보면 부자 지자체의 지방세를 가난한 지자체에게 나누어 주자는 것으로 볼 수 있어서, 이 개편안이 실행되면 이익을 보게 될 농어촌 지자체에서는 대체적으로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지방세를 최고 80%를 뺏기게 생긴 6개 지자체에서는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나오는 재정자립도 top6이 통계 착시현상으로 인한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라며 각 지자체의 면적이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재정자립도만 기준으로 놓고 따졌다며 반발 중이다.
이 문제 관련해서 성남시에서는 지방재정 개편안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성남시청을 비롯한 관내 여러 곳에 걸어놓고 있고, 성남시를 운행하는 버스에도 지방재정 개편안 반대의 공고문을 붙여놓았다. 그리고 이재명 시장은 2016년 6월 7일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이 와중에 정부합동감사를 시행 중이던 행정자치부에서 6월 14일에 성남시에 한 요구 때문에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문제의 요구는 2014년 1월∼2016년 6월 중 특정된 90일간의 이재명 시장의 일정을 제출하라는 것이다. 이재명 시장이 단식해가며 정부와 맞서는 상황에 이런 요구를 한 것 자체만으로도 보복성 감사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는데, 그 요구를 정식 공문 형식을 안 갖추고 그냥 스프링노트 한장 쭉 찢어낸 메모(...) 그대로 팩스로 보내서 일이 더욱 시끄러워졌다.

이에 대해 행정자치부는 다른 23개 시군에도 비슷한 요구를 했다며 성남시장만을 노린 표적감사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또한 해당 메모는 경기도 감사관실에게 공문 작성을 위한 참고용 메모로 주면서 '여기 적힌 날짜의 이재명 시장 일정을 제출하라고 하시오' 한 것 뿐인데, 경기도 감사관실이 그 메모를 그대로 성남시에 팩스로 보내버려서 자신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편, 이재명 시장은 이런 행정자치부의 요구에 관하여 "그동안 문제가 된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사건 당일 7시간 동안의 행적을 밝힌다면, 나의 90일 동안의 행정 역시 밝히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6월 17일, 더불어민주당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겠으니 단식을 중단해달라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11일 만에 단식을 중단하였다. 이후 썰전에 나와 직접 밝힌 소감에 따르면 "단식은 시작하긴 쉬운데 중단하기가 어렵다. 명분 있는 출구전략이 중요한데, 김종인 대표가 그 명분을 줬다며 잘해주셨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재판


2018년 10월 말에 들어서 이재명은 배우 김부선과의 스캔들 의혹, 친형 이재선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관한 직권남용 혐의, 검사 사칭 논란 관련 허위 사실 유포 혐의,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허위사실 유포 혐의 건 등으로 재판중인데, 지사직 유지 여부가 걸린 중차대한 건이 다수 포함되어있어 이것이 어떻게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이재명의 정치, 경제적 생명[58]이 걸리게 되었다. 이 중 김부선과의 스캔들 의혹은 검찰이 12월에 최종적으로 무혐의 및 불기소 결론을 내리고 당사자인 김부선도 고소를 취하하면서 종결되었다. 그러나 대장동, 강제입원, 허위사실 유포 혐의 등에 대해서는 검찰이 기소 결정을 내려 재판에 회부되었다. 한편 또 다른 쟁점인 혜경궁 김씨 사건와 관련해서는 증거 부족으로 인한 무혐의 및 불기소 결론이 내려졌으며 이에 바른미래당 김영환 전 의원 측에서 이 건에 대해 재정신청을 하였으나 이듬해인 2019년 3월, 법원이 김영환의 재정신청을 기각함으로서 이 사건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2019년 5월 16일, 친형 강제 입원,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2019년 9월 6일, 항소심에서 강제입원에 대한 직권남용, 대장동 개발에 대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포, 검사 사칭에 대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포 혐의는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강제입원에 대해 사실과 다른 사실을 당선목적으로 토론회에서 발언했기에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포죄가 유죄로 인정되어 벌금 300만원 형을 받고 당선무효 위기에 몰렸다.  

본인의 재판과 관련해 1심때부터 전직 고위 판검사. 2심때엔 전 대법관까지 동원한 '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는데, 이에 대해 전관예우를 통해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수원지방검찰청 공안부장 출신인 이태형 변호사, 이상훈 전 대법관, 이홍훈 전 대법관과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이 이재명 지사의 변호인단에 속해 있다. 게다가 이재명은 과거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법조계 전관예우를 뿌리 뽑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2019년 10월 30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당선무효 위기에 놓이게 된 원인인 공직선거법 제250조 1항(허위사실공표죄)과 형사소송법 제383조(상고이유)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의 일부 지역위원장들과 당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재명 본인도 11월 1일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였다. 이에 대해선 위헌심판에 대한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대법원의 선고를 저지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재판을 미루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었지만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소에서는 이재명 측의 헌법소원 청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또한 후술하다시피 이재명의 상고심 선고가 헌법소원 청구에 대한 헌재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이뤄짐에 따라 꼼수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상고 제기 후 두 달 채 못 미치는 기간 동안 무려 10만 명이 넘는 인원의 이재명의 선처를 구하는 내용의 탄원서가 대법원에 답지했으며 이에 상반되는 엄벌 촉구 탄원도 250건 이상 접수되었다. 

대법원 2부는 법정 처리기한을 넘기도록 위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었다. 

2020년 7월 16일 대법원은 이재명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다수의견으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다수의견(7명)은 불리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반대 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본 반면, 소수의견(5명)은 이 지사가 불리한 사실은 숨기고 유리한 사실만을 덧붙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검찰측의 나머지 상고에 대해서는 모두 기각했다. 아직 확정판결은 안 났지만 상급심인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함에 따라 이재명은 도지사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공직선거법 상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하여서만 다루며, 1심부터 무죄가 나온 형 이재선 씨에 대한 강제입원에 따른 직권남용은 검사의 상고가 대법원에서 기각됨에 따라 무죄 확정. 

이번 판결을 통해 경기도지사직을 유지하게 됨은 물론, 유력한 민주당의 대선주자로 급부상하게 되며, 절체절명의 순간을 지나 위기를 기회로 바꾼 상황이 되었다. 실제로 17일 YTN의 의뢰를 받고 리얼미터에서 조사한 대선주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강력한 1위였던 이낙연이 지지율이 빠져 23.3%로 머문 반면, 이재명은 역대 최고 지지율은 18.7%로 올라서며 오차범위 내에서 이낙연을 추격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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