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2003
현대그룹 창설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이자 현대아산 회장으로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총괄해왔으나 2003년 투신 자살한 기업가
정몽헌 회장은 지난 1948년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태어났으며 서울 보성고와 연세대 국문과를 거쳐 75년 11월 현대중공업 차장으로 현대그룹 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현대건설 부장과 상무를 거쳐 지난 1981년 현대상선 대표이사 사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특히 1992년 지금은 하이닉스로 이름이 바뀐 현대전자를 창립, 단기간에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 대열에 올리기도 하였다.
정 회장은 1998년 그룹 공동 회장 취임에 맞춰 금강산 관광 등 대북 사업을 관장하기 시작하면서 정주영 회장의 강력한 후계자로 떠올랐다. 특히 지난 99년 반도체 부문 빅딜을 통해 LG반도체를 인수한 옛 현대전자가 D램 부문 세계 1위로 급부상하면서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지난 2000년 형인 정몽구 회장을 제치고 공식적으로 현대그룹의 법통을 이어받았으나, 현대그룹 분열의 시발점이 된 이른바 '왕자의 난'에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그룹 경영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였으며 자동차와 중공업이 그룹에서 분리되었다.
설상가상 그룹의 모태격인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까지 유동성 위기 끝에 출자전환으로 떨어져 나가, 현대그룹은 재계 10위권 밖의 소그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 회장은 2000년 6월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취임 이후 금강산 관광사업, 개성공단 개발 등 대북사업에만 전념했으나 대북사업은 적자를 면치 못해 현대 계열사의 자금난을 초래했으며, 2002년 9월부터는 대북송금 의혹이 불거지면서 궁지에 몰렸고 결국 2003년 8월 서울 계동 사옥에서 투신자살했다.
투신자살에 대한 의혹:
정몽헌 회장이 현대사옥 12층에서 투신한 것으로 알려진 창문은 가로 95cm, 세로 54cm의 반개폐 식으로, 정 회장은 이 창문이 가로 95cm, 세로 37cm 열려있는 상태에서 떨어졌다. 이 크기는 어른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크기로 자의로 몸을 던지기엔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다.
유서 내용:
김 사장에게 남긴 유서 (1장) =명예회장님께는 당신이 누구보다 진실한 자식이었습니다.
당신이 회장님 모실 때를 보면 저희는 자식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
당신, 너무 자주하는 윙크 버릇 고치십시오.
<> '죄송합니다' 유서 (1장)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습니다.
또다른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군요.
여러분의 용서를 바랍니다.
<> 부인에게 남긴 유서 (2장) =○○엄마 모든 것이 나의 잘못입니다.
당신에게 모든 짐만 남기는군요.
○○, △△, □□, 이 아빠를 용서하기를 바랍니다.
어리석은 아빠를 용서하기를 바랍니다.
나의 유분은 금강산에 뿌려주기 바랍니다.
○○야, 오늘 보니 더 이뻐졌더군.
나 때문에 너의 생활이…사랑해.
△△, 너를 볼 때마다 어른이 되가는 것을 느끼는데 너는 굳건히 잘 살 것이야.
□□아, 너 하고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구나.
○○, △△, □□, 엄마 잘 모시고 행복하게 살아라
나머지 한장은 밝히지 않는다. - 의혹.
부인과 아들에게 존칭을 썼다. - 의혹.
자살하기 바로 하루전에 헬쓰장에서 2시간동안 열심히 운동한 점.
비자금 관련한 공판에서의 중요한 진술을 바로 며칠 앞둔 점.
자살할 사람으로 보기에는 할일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었다는 점.
일반적으로 자살하는 사람의 행동과 다른 징후. (ex 시계는 벗어두면서 신발은 신고 뛰어내림.)
정 회장이 쓴 것으로 보이는 자필유서는 필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휘갈겨 쓴 필체로 작성됐으며 언 론에 공개된 유서 내용은 너무나 짧고 간단 명료했다.
▼외상이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시신을 확인한 결과 “정 회장은 건물 뒤편 화단으로 떨어져 피를 흘리거 나 큰 상처는 없었다”고 밝혔다.
12층에서 투신한 정 회장이 아무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무엇일까?”, “적어도 다발성 골절과 두개골 골절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자살한 시신에서 피가 나지 않은 것은 미리 죽 여서 던졌기 때문에 피가 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의구심을 나타낸 사람들도 있었음
▼자살을 앞둔 사람으로서 특이한 행동이 발견되지 않았다.
종로경찰서 이길범 서장은 4일 “3일 정몽헌 회장과 저녁을 함께 한 관계자들은 정 회장에게서 자 살에 대한 어떤 징후도 없었다고 밝혔다”며 “정 회장 부인의 진술도 대북송금 특검 등에 대해 정 회장이 고민해 왔지만 지난 3일 식사 자리에서 자살에 대한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다.
또, 전날 11 시까지 함께 있었던 고교동창인 박기수씨의 증언을 봐도 정 회장의 자살 징후는 없었다”고 전했다 .
▼그밖의 수상한 징후들….
정 회장의 시신을 처음 목격한 사람들이 각 언론사들마다 다르다.
연합뉴스는 청소원 윤모(63)씨에 발견됐다고 알렸고 조선일보는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또 AP통신은 종로 경찰 서 관계자의 말을 인용, 정회장의 여 비서가 시신을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전하는 등 같은 사건을 두고 언론사들이 보도한 첫 목격자들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그밖에 또 경비원의 연락을 받고 뛰쳐나온 비서실 여직원 최모씨(28)가 꽤 이른 시간인 5시 50분에 출근해 있었다는 점도 의문시되는 부분이다.
아이디‘정론’인 네티즌은 “과연 그 시간에 왜 여직원이 회사에 있었나?”라고 반문하며 “새벽 5시 50분에 여비서가 출근해 있었다는 대목은 정말 이상하다”고 의심했다.
또 공개되지 않은 한 통의 유서에 대해서도 의문이 가고 있다. 언론과 경찰은 정 회장이 자살 직전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과 부인 등에게 보내는 3통의 유서를 남겼다고 보도했고 경찰은 4일 오후 유 서의 내용을 모두 공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통의 유서는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어 남겨진 한 통의 유서에 대한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나머지 한 통에 밝힐 수 없는 내용이 있는 것 같다"며 의심을 품었다.
그는 또 "믿을 수는 없지만 만약 이번 사건이 타살이라면 혹시 그 유서에 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조심스럽게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이와 비슷한 사례로 지난 2000년 10월 말 당시 동방·대신금고 로비의혹의 핵심인물 이던 장 내찬 전 금감원 비은행검사 1국장이 시내의 한 여관에서 수건걸이에 목을 매 숨진 사건을 두고 경 찰이 성급히 자살로 결론지어 논란이 일었었다.
경찰은 유서가 발견된 점을 들어 타살로 몰고 갔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장내찬씨가 자기 키보다 낮 은 162cm 높이의 수건걸이에 목을 매달았다는 점, 전날까지도 형에게 자수하겠다고 말했다는 점, 금융마피아 등 장국장의 죽음으로 이득을 볼 사람이 많다는 점 등을 고려해 자살이 아닌 타살이 라는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여당과 경찰은 유서만을 단서로 자살로 매듭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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