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학교 출신의 아사하라 쇼코(麻原彰, 본명은 마츠모토 치즈오)가 1984년 요가를 수행하는 도장(옴신선회)을 도쿄의 번화가인 시부야에 개설하면서 출발한 신흥종교다. 1987년 옴진리교로 개칭한 아사하라는 1989년 도쿄지사로부터 종교법인으로 인가받은 뒤 '산바라화 계획'으로 불리는 일종의 통일국가 건설계획을 내세웠다. '일본의 왕이 돼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아사하라 교주의 교의를 실행하기 위해 종말론적 신앙론을 펼친 옴진리교는 초능력, 요가, 종말사상 등을 앞세워 청년층을 중심으로 교세를 확대해 나갔다.
옴진리교는 힌두교의 시바신을 받들고, 절대자유 및 절대행복 상태로 혼을 진화시킬 수 있는 아사하라 교주가 갖가지 비법을 통해 당신을 해탈상태로 이끌어 간다.'고 설법하면서 신비주의와 초능력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들을 끌어들였다. 실제로 명상 자세로 공중에 떠 있는 아사하라의 사진이 실린 잡지를 보고 옴진리교에 빠져든 10, 20대층이 속출했다. 한때 신자가 1만 명을 넘었으며 모스크바 등 4곳에 해외 지부를 두기도 했다.
옴진리교는 1990년 진리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섰으나 교주 이하 25명이 전원 낙선했고, 이를 계기로 과격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기존의 제도로 불가능하다면 살인을 통해서라도 체제 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이후 독가스 살포와 살해 등의 범죄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옴진리교 테러사건(1995)
옴진리교는 1995년 3월 20일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출근 시간에 도쿄 지하철 3개 노선, 5개 차량에서 사린가스(사람의 신경기능을 마비시키고 살상할 수 있는 맹독성 가스)를 살포해 13명이 사망하고 6,0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여기에 피해 신도를 돕고 있던 변호사 일가족 3명을 몰살하고 수사를 지연시킬 목적으로 교단 간부를 살해한 사실도 드러났다.
일본 당국은 옴진리교 테러사건 직후 전면 수사에 착수해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를 비롯해 189명을 기소했다. 그리고 도쿄지법은 1995년 10월 옴진리교에 대해 일본에선 처음으로 종교단체 해산명령을 내렸다. 법원의 교단 해산명령 이후 옴진리교는 몰락했으나 알레프(Aleph)로 이름을 바꿨고, 2007년에는 히카리노와(Hikari no Wa)라는 파생단체까지 생겨났다. 이 두 신흥종파의 신자는 15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 4월 교주 아사하라에 대한 공판이 개시되었으나, 2004년 2월 1심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무려 7년 10개월이나 걸리면서 일본의 사법제도에 대한 수많은 논란도 일었다. 공판은 2003년 10월 결심까지 256회 열렸는데, 공판시간 1292시간 중 1258시간이 552명의 증인 심문에 소요됐다.
법원은 2004년 2월 아사하라 교주에 대한 1심 판결에서 사린가스 테러 등 13개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검찰의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2006년 9월 최고재판소 상고가 기각되면서 아사하라에 대한 사형 판결이 확정됐다. 이 밖에 옴진리교 테러사건 관련자 189명이 기소돼 이 중 13명은 사형, 5명은 무기징역, 80명은 유기징역, 87명은 유기징역 집행유예, 3명은 벌금형, 1명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에 대한 사형은 2018년 7월 6일 집행됐다. 아사하라 교주에 대한 형 집행은 1995년 5월 체포 이후 23년 만으로, 앞서 옴진리교 관련 사건으로 총 13명이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실제 사형이 집행된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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