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일생과 거짓말 의혹들
안철수는 대한민국의 좌익 진보 성향 정치인중 한명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단국대학교 기초의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학과장 보직을 맡기도 했다. 이후 서울대 의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V3라는 컴퓨터 안티 바이러스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며 이는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된 백신 프로그램이자 상용 소프트웨어다. 이후 프로그래머로서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고, 성공한 벤처기업가로 자리매김 하였다. 2005년 안철수연구소 CEO직에서 물러난 뒤 KAIST 교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지냈다. 이러한 다채로운 이력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작가와 방송인 김제동과 더불어 청춘콘서트를 진행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게 된다. 이러한 지지를 자산으로 2012년 9월 19일, 정치권에 입문하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 당대표로서 제6회 지방선거에서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내었으나,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후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2015년 2.8 전당대회로 시작된 문재인 대표 체제와의 지속적인 갈등을 빚다 결국 탈당하여 2016년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국민의당 공동대표로서 20대 총선을 지휘하여 서울 노원구 병에서 당선되고, 의석 38석이라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리베이트 파문으로 당대표 직에서 사퇴했다. 19대 대선 경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선출되어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21.41% 득표로 홍준표 후보에게 밀린 3위로 낙선했다. 이후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으로 정치은퇴까지 거론되었으나, 오히려 이런 세간의 예상과 반대로 국민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였다. 당내에서 극심한 반발이 있었으나 강행하였고 이후 당대표로 당선되었다.
국민의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대비하여 바른정당과 연대 논의를 시작했으며, 이는 합당 논의로 이어졌다. 당내에서 "말바꾸기", "호남에 대한 배신"이라며 강한 반발이 있었고, 결국 분당 사태까지 겪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을 강행하여 바른미래당을 창당하게 되며, 이후 당대표직을 사퇴하여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동시에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득표율 19.55%로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게조차 밀린 3위로 낙선하였다. 이후 독일 뮌헨 근교의 막스 플랑크 혁신과 경쟁 연구소에 초빙 연구원 자격으로 간 연수를 끝마치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법, 과학과 기술 프로그램 방문학자로 활동하였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20년 1월 2일, 정계 복귀를 선언했으며, 2020년 1월 19일 귀국, 1월 29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창당작업에 착수, 2020년 2월 23일 새로운 당을 만들고 본인이 대표가 되었다. 새 당명은 본래 "국민당"으로 하려 했으나 선관위의 반대로 "국민의당"이 되었다. 2016년 천정배, 박주선 등과 함께 창당했던 국민의당(2016년)과 동일한 이름이지만 당 색은 전과 다르게 오렌지색으로 정했다.
3. 선거이력 및 소속정당
소속정당은 국민의당이다.
4. 안철수의 일생
1962년 2월 26일,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아버지 안영모와 어머니 박귀남 슬하 2남 1녀 중 첫째로 출생했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동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의 병원 건물[1]에 있는 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화초 심는 것을 좋아해서 건물 옥상에다가 갖가지 종류의 꽃을 심어, 옥상은 이미 어린 안철수만의 화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학교 앞에서 사온 병아리를 곧 죽을 것이라는 모두의 우려와는 달리 닭까지 키워내기도 하는 등, 뭔가를 키우는것에 굉장히 능했다고 한다.
동식물을 키우는 것 외에도 기계를 분해하여 재조립하는 것을 즐겨 했다고 한다. 한번은 친척집 괘종시계를 망가뜨리기도 했다고. 그래서 그를 잘 아는 친척들은, 그가 집에 오는 날이면 중요한 기계는 모조리 숨겼다고 한다.
의외로 중학생 시절까지는 그다지 우등생이 아니었다고 한다. 반에서 중간 정도 하는 성적이었으나 대신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매일 책을 빌렸고 빌린 책은 몇 권이든 하루 만에 다 읽어서 바로 다음날 반납했는데, 사서교사가 이를 보고 '얘가 일부러 장난 치는 거 아닌가'하고 의심하기도 했다고. 어릴 때 꾸준히 독서를 한 결과인지, 부산고등학교 재학 때부터는 성적이 일취월장해왔다고한다. 그 결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시절 진료봉사 동아리에서 만났던 1년 후배 김미경과 1988년 결혼하였다. 그리고 딸 하나를 두었다. 부인은 병리과 전문의로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지냈다.
1991년 2월 부터 1994년 4월 까지 해군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장기복무를 지원해 합격하고 원에 의한 전역을 하여 최종 계급은 대위. 해군 의무병과 인원들의 특성상 해병부대에서도 근무했기 때문에, 해병대와도 인연이 있다.
5. 안철수의 거짓말 의혹들
이미지와는 다르게 의외로 필요없는 거짓말들을 많이 했다.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가족들에게 군대간다는 말을 안하고 나왔다거나 얼굴이 안나오는 조건으로 TV 출연을 허락했다는 내용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거짓말인데 본인 스스로 방송에 나와서 순진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했고 국민들은 믿었다.
이런 내용은 교과서에도 실렸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로 판명이 났다.
1998년에 방송된 MBC 다큐 <성공시대>를 보면 부인인 김미경씨가 기차역까지 나가 배웅했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얼굴이 나오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를 허락했더니 손만 찍어갔다고 발언했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닌것으로 드러났다.
편안한 의대 교수직을 포기하고 더 의미가 크고 재미있는 백신 개발의 길을 택했다고 발언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닌것으로 드러났다.
2001년 9월 212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군의관을 마친 뒤 복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창업에 나섰다고 스스로 밝힌바 있다.
"군의관을 마친뒤 복직이 안돼 10개월간 실업자로 지내면서 무엇보다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사는게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창업하게 됐다." - 안철수-
그리고 안철수는 미국 맥아피사로부터 1000만불 투자를 제안 받았으나 이를 거부한적이 있다. 라고 말했고 이 내용은 교과서에도 실렸다.
하지만 안철수의 발언 외에는 어떤 증거자료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6. 안철수의 공약과 정책들
안철수는 직원들과 간담회에서 한 직원이 "회사에 노조가 생기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하자 "회사 접어야죠"라고 대답해 분위기가 얼어붙었다는 일화가 정치계 입문 후 인터넷에 소개돼 노동관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새정련 대변인을 지냈던 금태섭 변호사는 "(저서인) 부터 여러 차례 노동 문제를 다뤘고 대선 캠프에서 노동 분야도 따로 있었다.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과거 회식 자리 비슷한 발언에 대해 당장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이상한 전언을 가지고 이렇게 쓴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박하였다.
위 기사의 원 소스는 물뚝심송의 블로그 게시글인데 2015년 12월에 이 논란이 다시 불거졌고, 결국 안철수 의원실에서 물뚝심송을 상대로 법적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안철수는 다른 좌익 정치인들과 같이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며 세종시 수도이전에 찬성하며 원전 축소에 찬성한다.
주식 양도차익 과세 찬성하며, 주택임대소득에 즉시 과세를 주장하며 상속세 증세, 법인세 증세 공약을 냈다.
연간 3천만원 이상 초과시 양도차익 과세는 현행 민주당 정부보다 더 강한 증세 정책이다.
경제부분만 놓고 봤을때 민주당보다 좌측 성향을 가진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성 이재용의 일생, 삼성가 가계도 (0) | 2020.10.21 |
---|---|
정치인 김종인 - 동화은행 뇌물 수수사건 (1) | 2020.10.20 |
코리안 좀비 정찬성은 누구인가 (0) | 2020.10.18 |
윤석열의 경력 약력 가족 고향 (0) | 2020.10.18 |
이낙연의 강점과 약점 (0) | 2020.10.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