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의 일생, 삼성가 가계도
대한민국의 기업인. 삼성전자의 부회장이자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의 장남으로 1남 3녀 중 맏이다.
현 삼성전자 부회장 겸 삼성문화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삼성전자의 차기 회장으로 사실상 확정된 인물이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병으로 입원한 이후 삼성전자, 나아가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총수가 되었다. 2015년 5월 15일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었다. 그리고 2016년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 이후 책임을 지며 등기이사의 자리에 올라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1. 이재용의 경력
• 1991.12. 삼성전자 총무그룹 입사
• 2001.3. ~ 2003.1.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
• 2003.1. ~ 2007.1.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
• 2004.7. ~ 2008.5. 에스엘시디 S-LCD 등기이사
• 2007.1. ~ 2008.4. 삼성전자 전무, CCO : Chief Custo mer Officer
• 2008.4. ~ 2009.12. 삼성전자 전무
• 2010.1. ~ 2010.12.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 부사장, COO
• 2010.12. ~ 2012.12.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 사장, COO
• 2012.12. ~ 삼성전자 부회장
• 2015.5. ~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 2015.5. ~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 2016.9. ~ 등기이사로 등재
2. 이재용의 학력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양사학과(87학번)를 졸업하였다. 68년생 87학번 현역 입학임에도 불구하고 삼수해서 입학했다는 루머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조부인 이병철 회장이 "경영학은 나중에도 금방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는 인문학을 전공하라"고 권유했기 때문에 인문대를 입학한 것이라고 한다. 그와 사촌지간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처음에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진학했던 점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도 당시 경제 대국으로 승승장구하던 일본을 잘 알아야 한국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던 점 또한 동양사를 선택한 배경 중 하나인 듯하다. 그의 학사 논문도 일본의 산업공동화에 대한 논문이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는 중국사에서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위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특이한 일이긴 하다.
동양사학과에 입학한 이유가 경쟁률 스나이핑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고 이를 언급하는 신문 기사까지 나왔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87학년도 서울대 학과별 지원상황을 보면 당시 동양사학과는 2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대 평균 경쟁률이 1.6:1이었고 동양사학과는 문과계열 중 5번째, 문이과 합쳐서(예체능 제외) 7번째로 경쟁률이 높았다.
당시는 대학에 지원할 때 전공에 구애되기보다는 학교가 우선시되는 경향이 강했으며 서울대를 정점으로 모든 대학 학과가 학력고사 점수순으로 한 줄로 서열화됐던 시대였으므로 전공도 결국 본인의 점수에 맞춰 선택한 것으로 보면 무난할 듯하다.
당시 배치표 종합적으로 따져봤을 때 외려 지금 서울대 동양사학과 이상의 입결일 때의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했다고 봐야한다. 그때는 지금처럼 사학과가 낮은 취급을 받지도 않았고(기초학문을 등한시하는 기조는 IMF 이후로 비교불가하게 심해졌다) 서울대 위상은 비교 불가할 정도로 지금보다 높았다. 80년대에는 학과에 구애되지 않을 정도로 서울대가 독보적인 위치였다.
서울대 졸업 후 게이오 대학 MBA를 재수하고 입학,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차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를 수료하였고 하버드에서 동양인 최초 최고학점을 받기도 하였다. # 이런 저런 말은 많지만 그의 학업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셈이다.
3. 이재용 및 범삼성가 가계도
조미료 '미원'으로 알려진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장녀이자 9세 연하인 임세령과 1998년에 결혼했으나 2009년 합의 이혼했다.
현재 임세령은 대상그룹의 전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4. 이재용의 경영능력
부친 이건희 회장이 2014년 갑작스레 쓰러지고 부회장으로써 본격적으로 경영에 나선 뒤부터 삼성을 문제 없이 잘 이끌고 있으며 매우 우수한 실적을 올리며 우수한 경영능력을 입증했다.
부친인 이건희는 전형적인 확장형 경영자로 공격적으로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반면 이재용은 수성형에 가까운 타입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은 이미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공격적인 경영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삼성 사이즈에서는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 이재용은 준수한 실적을 올리며 삼성을 이끌고 있다.
5. 이재용의 흑역사
e 삼성의 실패 : 2000년 당시 33세였던 이재용은 인터넷 벤처 지주회사인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을 창업했다. 이재용이 직접 지분 60%의 대주주로 출자했고 나머지 지분은 삼성 계열사와 특히 삼성 2인자인 이학수와 김인주까지 참여한 삼성 수뇌부가 단단히 베팅한 사업이었다.
이렇게 설립한 e삼성의 목적은 IT 벤처사업 투자를 목표로 국내 투자는 e삼성, 해외 투자는 e삼성인터내셔널로 나누어 진행했으나 공정위의 철퇴와 닷컴 버블, 코스피 버블이 꺼지면서 e삼성은 폐급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2001년 e삼성인터내셔널은 설립 첫해부터 투자회사들의 적자로 76억 원의 손실을 냈고 e삼성과 나머지 해외법인, 투자한 모든 회사의 적자를 합치면 도합 173억의 적자를 냈다. 이재용의 e삼성 보유 지분은 제일기획, 삼성 SDI가 총합 200억에 사들였다. 그리고 훗날 김용철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비자금 사건에서 수사대상에 올랐다.
6. 스포츠광 이재용
엄청난 야구 팬이라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어린 시절에 김시진과 캐치볼도 하고 야구장에 자주 와서 같이 시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장난삼아 이재용을 김시진 제자라고도 한다. 이 때문인지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10개 구단 모기업의 오너 중에서는 야구장 방문이 가장 잦은 편이다. 이재용은 라이온즈의 구단주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사실상' 구단주일 뿐이다. 실제 삼성 라이온즈 구단주는 이수빈이다. 이재용은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 경기가 있으면 일 년에 두세 번은 잠실을 찾고 한국시리즈 때는 시간 나는 대로 잠실구장 경기를 찾는다.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는 서울과 가까운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을 찾기도 했다.
골프도 무척 잘 친다고 한다. 삼성그룹의 비자금을 폭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저서 에 따르면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구조조정본부'(지금의 미래전략실)의 핵심 인사로 일했던 시절 이재용 당시 상무와도 가까이 지냈었는데 그와 함께 골프를 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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