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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생존자 편향이란?

by @#$*&! 2022.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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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편향이란?

지난 10년간 치킨 가게는 3배 이상 늘어 3만 600개를 넘었다. 치킨 가게뿐만 아니다. 인구 1,000명당 음식점 수는 12개로, 미국의 6배, 일본의 2배 이상에 달한다. 문제는 치킨 가게의 거품이 한국 금융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 2004년 가처분소득 대비 103퍼센트에 그쳤으나 2012년 말에는 136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이는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미국의 140퍼센트에 근접한 수치다(미국의 현재 가계부채는 105퍼센트로 감소했다).

2013년 9월 15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치킨 가게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내놓은 기사 내용이다. 왜 치킨 가게가 3만 개를 넘어섰을까? 이 신문이 잘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조기 은퇴시스템이 가장 큰 이유다. 대부분의 조기 은퇴자들은 자영업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이 신문은 한국의 노동자 2,400만 명 가운데 자영업 비율은 25퍼센트로 미국의 6퍼센트와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숫자라면서, 한국의 자영업자 가운데 50대 수는 32퍼센트나 늘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 기자가 취재를 열심히 한 것 같다. 우리 언론도 다 그런 식으로 진단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치킨 가게가 ‘자영업자들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꽤 알려졌는데도, 은퇴 후 단지 할 일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성패 여부에 관계없이 치킨 가게를 여는 걸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나름 시장조사를 해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시장조사에 함정이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죽은 자만 말이 없는 게 아니다. 실패자도 말이 없는 법이다. 실패자는 찾기 어렵다. 실패 사례를 애써 찾아낸다 해도 성공 사례를 더 많이 접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앞에서 살펴본 ‘과신 오류’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경우의 과신 오류에는 성공 사례, 즉 살아남은 자들의 사례를 많이 접한 게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를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의 문제다. ‘생존자 편향’이라고도 한다.

생존 편향은 생존에 실패한 사람들의 가시성 결여(lack of visibility)로 인해 비교적 가시성이 두드러지는 생존자들의 사례에 집중함으로써 생기는 편향을 말한다. 이 편향은 ‘낙관주의 편향’과 ‘과신 오류’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연구자들에게 실패 사례는 기록이 없거나 빈약한 반면, 성공 사례는 풍부한 기록이 남아 있으므로 본의 아니게 성공 사례를 일반화하는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언론도 ‘성공 미담’ 위주의 기사를 양산해내는데, 이 또한 기사의 흥미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도 있지만 실패 사례를 찾기가 어려운 탓도 있다. 실패를 한 사람이 뭐가 좋다고 자신이 나서서 “왜 나는 실패를 했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겠는가 말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그런 기사들도 나오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예외적인 것일 뿐 성공보다 훨씬 많은 실패 사례는 언론 취재와 보도에서 사장되기 마련이다. 언론에 재미 교포로 성공한 미담들은 자주 실리지만, 비참한 실패를 한 사례는 거의 실리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주식 투자의 실패 요인 중 하나도 바로 ‘생존 편향’이다. 주식시장에서 승자는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며,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은 책을 쓰고 연사로 나선다. 이들의 성공 신화에 매료된 이들은 리스크에 눈이 멀게 되고, 주식 투자를 쉽게 여기며 가볍게 뛰어든다. 급등주나 대박주의 환상에 젖어 자신의 전 재산을 거는 사람들마저 생겨난다. 반면 돈을 잃은 패자는 말이 없다. 아니 말이 없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책을 쓸 수도 없으며 강연도 할 수 없다. 이들의 경험이 더 보편적인 것이지만 승자들만 활개치니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 뻔하지 않은가.

세계적인 경영 전문가들도 생존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그 대표적 사례가 1982년에 출간해 1년 만에 300만 부가 팔린 『탁월함을 찾아서(In Search of Excellence)』의 저자인 톰 피터스(Tom Peters)다. 국내에선 『초우량 기업의 조건』으로 번역·출간된 이 책에서 탁월한 우량 기업으로 선정된 기업 중 상당수가 얼마 후 전혀 우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책이 출간된 지 2년 후 『비즈니스위크』는 「이럴 수가!(Oops!)」라는 커버스토리에서 피터스가 선정한 43개 회사 중 절반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릭 채프먼(Rick Chapman)은 『탁월함을 찾아서』를 비판하고 조롱하기 위해 『멍청함을 찾아서(In Search of Stupidity)』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피터스도 멍청해진 걸까? 이후 나온 그의 책들엔 감탄사가 홍수 사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예컨대, 피터스는 1992년에 출간한 『해방경영(Liberation Management)』에선 “경쟁자의 손에 당하기 전에 당신의 기업을 먼저 파괴하라! 조직을 파괴하라! 계속 파괴해 나가라!”고 외쳤다. 모든 문장에 붉은색 느낌표가 찍혀 있는 이 책에는 통 넓은 사각팬티 차림의 저자 사진까지 실려 있다. 피터스의 이런 활동과 관련해서 『포천』 2000년 11월 13일자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톰 피터스에 관해 한 가지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의 첫 책(1982년의 베스트셀러 『In Search of Excellence』)을 알고 있을 것이다. 두 가지를 아는 사람은 피터스가 그 후 그만한 책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세 가지를 아는 사람은 가치 있는 첫 책이 나온 뒤 18년이 흐르는 동안 피터스의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것도 알 것이다.”

피터스의 머리가 정말 이상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초우량 기업 선정이 생존 편향의 지배를 받은 건 분명한 것 같다. 생존 편향은 실패담보다는 성공담이 잘 팔리는 시장 논리 때문에 늘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주범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그렇지만 톰 피터스의 책은 ‘경영서’라기보다는 ‘정치서’로 이해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그의 책은 일본 기업들의 성공적인 경영 기법이 서양에까지 밀려 들어오면서 서양 산업계의 자신감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출간되어 미국 기업인들의 자존감을 살려주는 정치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에서 비즈니스 관련 서적의 홍수 사태가 벌어졌다).

성공한 사람들이 털어놓는 자신의 실패 경험담도 생존 편향을 강화시킨다. 이들의 이야기는 늘 해피 엔딩이기 때문이다. 미국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A. Edison)은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작동하지 않는 실험 1만 가지를 해보았을 뿐이다(I have not failed. I’ve just found 10,000 ways that won’t work)”고 했지만, 이런 말을 그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특히 한국처럼 이른바 ‘패자부활전’이 없는 나라에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믿지 않는 게 좋다. 소심해져야 한다는 게 아니라 신중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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