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물

SK그룹 가계도, 회장 최태원 프로필 및 논란들

by @#$*&! 2021. 7. 22.
728x90

SK그룹 가계도, 회장 최태원 프로필 및 논란들

1. 최태원의 프로필

 

대한민국의 기업인. SK그룹의 회장. 대한상공회의소의 회장.

경기도 수원시 출생으로 최종현 회장의 장남이자, SK그룹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조카이다.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 통합 과정을 수료했다.

대한핸드볼협회 회장도 같이 역임하고 있다. 한동안 대한민국의 대기업 총수 중에서는 젊은 축에 속했지만, 지금은 평균 나이대에 속한다. 이재용 삼성 회장이 1968년생,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970년 생, 구광모 LG 회장이 1978년 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955년 생이다.

2021년 6월부터 인스타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정용진보다도 훨씬 체급이 큰 대한민국 4대재벌 총수 가운데 한 명의 활동이라 게시물이 몇개 없어도 엄청 주목받고 있다. 대한상의 회장 활동에 이은 이미지 재고 다각화의 일환으로 보인다. 

2. 최태원의 경영활동

 

1992년 SK상사에 부장으로 입사 후 상무를 거쳐 SK주식회사 부사장직을 맡았으며, 이후 SK 대표이사 회장에 선임된다.

1998년 8월 26일 최종현 선대회장 작고 당시, 유언 없이 갑작스레 별세함에 따라 SK그룹은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에 휩싸일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당초 SK그룹의 경영권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던 최종건 회장의 장남인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결심이 큰 역할을 했다. 최윤원 회장은 "우리 형제 가운데 태원이가 가장 뛰어나다"며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후계자로 추천했고 만장일치로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을.승계하게 되었다.

2014년 10월 옥중에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기업’이라는 저서를 내며 사회적 가치 창출을 향한 관심을 보였다. 2015년 8월 경영에 복귀한 뒤 사회적 기업 지원을 확대하고 임직원들에게 사회적 가치 구현을 독려하고 있다.

SK그룹 직원 사이에서는 인간적인 평판이 상당히 좋은데, 직원들을 대할 때 항상 예의를 갖추고 친절한 자세를 보여서라고 한다. 이러한 성격은 부친인 최종현 전 회장을 닮았는데, 신약 개발로 유명한 김대기 박사가 SK케미칼에서 근무할 당시 최종현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 앞에서 신약 개발이 부작용으로 인해 실패했다는 보고를 할 때의 에피소드가 있다. 김 박사의 발표를 묵묵히 듣고 있던 최종현 회장이 갑자기 "김박사, 그렇다면 반은 성공한 것 아니오?"라고 묻자 주변이 술렁거리고 김 박사도 당황했는데, 그 뒤로 이어진 한마디가 압권. "부작용을 진작에 발견해서 해결한다면 더 완벽한 신약을 개발할 수 있잖소? 앞으로 더 열심히 개발해보시오."

2019년 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를 구성원의 행복에 두겠다고 발표한 후 실제 구성원들과의 다양한 소통 활동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원들과 행복을 주제로 대화하는 행복토크 100회를 채우기도 했다. 그 외에도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의 부흥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의 여러 긍정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2013년, 선물투자를 위한 회사 자금의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관련 기사. 2014년 3월 4일에 모든 계열사 대표직 및 그룹 내 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1년 뒤, 2015년 8월 13일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에 경제인 14명을 포함한 6천 527명과 함께 특별사면 되었다. 이후 SK 회장직에 다시 복귀했다.

그가 복귀한 후 SK 그룹의 실적은 크게 성장했다. SK이노베이션 회장 취임 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행복추구'를 핵심으로 하는 SKMS(SK그룹 경영관리체계)의 재정립과 그룹 재무구조 개선, 수출기업으로 전환을 통해 SK그룹을 재계 순위 3위로 끌어올렸다.


3. SK의 반도체 사업 진출


2011년 하이닉스를 인수해 그룹의 사업영역을 정유와 통신에서 반도체로 확장했다. 이를 통해 내수기업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평을 받는다.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과 메모리반도체 세계 2위 기업인 하이닉스의 시너지까지 기대할 수 있는 이상적인 결합이었다. 하지만 인수하기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그룹 고위 임원들은 합병에 반대했다고 하나 “무슨일이 있어도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고 밀어붙였다고 한다.

앞서 2010년 그는 그룹이 매년 10% 이상씩 발전하기 위해서는 SK텔레콤과 같은 회사를 키워 내야 한다며 또 다른 미래 먹거리를 찾아 다녔다. 그러던 중 그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지인을 만나 반도체 사업의 전망이 밝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최 회장이 반도체에 눈을 뜨게 된 결정적 계기다. 그는 정보기술(IT) 분야가 세상을 바꿀 것이고 반도체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사업이라고 확신했다. 최 회장은 곧바로 반도체 공부를 시작했다. 1년 가까이 반도체를 파고든 최 회장은 2010년 말 하이닉스를 인수하겠다는 의중을 그룹 이사진에게 밝혔다. 이사회 내부에서는 대부분이 반대하고 나섰다.

첫째, 인수 금액이 턱없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회사 내부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덩치의 회사를 먹고 배가 터지면 어쩌려고 저러나. 하이닉스를 인수하고 그룹 전체가 망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파다했다. 대부분의 경영진은 당시 돈으로 2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수와 동시에 모기업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둘째, SK텔레콤이 그룹 내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고 굳이 신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그룹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는데 왜 해보지도 않은 사업에 손을 대느냐는 의견이었다. 셋째는 반도체에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하이닉스라는 회사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SK는 하이닉스를 인수하기 위해 박정호 당시 SK텔레콤 사업개발실장(현 SK텔레콤 사장)을 필두로 태스크포스(TF)팀을 정식으로 꾸렸다. 자금 조달은 채권단 지분을 일부 인수하고 신주를 발행해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했다. 총 3조3700억원이 투자됐는데 신주 2조3400억원, 구주 1조300억원이었다.

당초 채권단은 썩 반기지 않았지만 최 회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반도체 경기가 좋아지면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줬다. 그리고 최 회장의 제안은 현실이 됐고, 그의 판단은 빠르게 증명되었다. SK하이닉스는 SK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성장했고, 2017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때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은 무려 13조7213억원을 기록했다. 3조원의 투자로 한 해에만 4배 넘게 수익을 거둔 것이다.

인수 이후 2015년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를 4800억원에 인수하고, 2017년 LG실트론(현 SK실트론)을 1조원에 사들였다. 2018년에는 도시바 메모리 지분을 4조원에 인수했다. 당시 최태원은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인수 작업을 지휘했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 사업까지 확보하면서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확고한 지위를 굳혔다. 인텔 낸드 사업 인수로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를 제치고 낸드부문 2위 업체로 올라서게 되었다. 반도체 경쟁사인 인텔을 대상으로 10조원 규모의 M&A를 성사한 배경에도 최태원의 ‘통큰 결단’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있다.

 

4. SK의 바이오 사업 진출


최태원의 업적으로 꼽히는 바이오 사업은 고(故) 최종현 회장 때부터 주도적으로 육성해온 사업분야로, 오랜기간 존버끝에 빛을 발한 케이스다. 최종현 회장은 SK의 강점인 정밀화학 사업을 발전시켜 차세대 먹거리로 제약·바이오 사업을 키우려 했고, 1993년 대전 대덕연구원에 제약팀을 꾸린 뒤 제약이라는 뜻의 ‘Pharmaceutical’’의 앞글자를 딴 ‘P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후 최태원 회장이 이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이끌어오며 혁신 신약 개발에 열을 올렸다. 2007년 그룹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후에도 지주사 직속에 신약 R&D조직을 두고 투자를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연구소는 설립 3년 만에 첫 성과를 낸다. 1996년 미국 FDA(식품의약국)으로부터 신약 후보 물질 임상시험 승인(IND, Investigational New Drug)을 받음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후 연구소는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의 유럽 상업화를 위한 5억 달러 규모 기술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는가 하면 수면장애 분야 1위 기업에 기술수출 및 FDA와 EMA 승인 획득이라는 연구실적을 이뤄냈다.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그의 의지에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98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소버린자산운용에 의한 적대적 M&A 피인수 위협 등으로 최 회장은 경영권을 놓칠 수도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최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의 경영권에 대한 외부 견제가 심해지면서 SK의 제약바이오산업도 존폐를 우려할 정도의 위기를 마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제약·바이오 사업의 육성을 멈추지 않았고, 2002년에는 바이오 사업을 꾸준히 육성해 2030년 이후 그룹의 중심축 중 하나로 세운다는 장기 목표도 제시했다. 신약 개발에서 의약품 생산, 마케팅까지 모든 밸류체인을 통합해 독자적인 사업 역량을 갖춘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을 키워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같은해 생명과학연구팀, 의약개발팀 등 5개로 나눠져 있던 조직을 통합, 신약 연구에 집중케 하는 한편 다양한 의약성분과 기술 확보를 위해 중국과 미국에 연구소를 세웠다. 그 후 신약 개발 사업의 집중 육성을 위해 2011년 사업 조직을 분할해 SK바이오팜을 출범시켰다.
2015년에는 SK바이오팜의 원료 의약품 생산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SK바이오텍을 설립하고 의약품 생산으로 사업 분야를 넓혔다. 신약 개발부터 생산까지 수직계열화에 나선 것이다. 이후 SK바이오텍은 2017년 다국적 제약사인 BMS의 아일랜드 생산시설을 구매했다.

2018년에는 SK가 미국의 위탁 개발·생산 업체 앰팩(AMPAC) 지분 100%를 인수했다. 지난해 10월에는 SK바이오텍,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앰팩 3사를 통합해 SK팜테코를 설립, 분산돼 있던 의약품 생산사업들을 하나로 합쳐 규모의 경제와 함께 효율 극대화에 나섰다.

바이오 산업은 이후 결실을 맺는다.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국내 최초로 성인 대상 부분 발작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제품명 엑스코프리)'에 대한 승인을 받았고, 수면장애치료제 '솔리암페톨'은 2019년 FDA 승인을 받은데 이어 2020년 EMA 승인을 획득했다. 한국에서 FDA 승인을 받은 혁신 신약 2개를 보유한 업체는 SK바이오팜이 유일하다. FDA의 신약 승인 확률은 6~8%에 불과하다는 점으로 볼 때 이는 엄청난 성과다. 신약 개발 경험이 전무한 신생 업체가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개발, 판매 허가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FDA 승인을 받았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이다.

신약 개발은 통상 10~15년의 기간과 수천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되고도 5000~1만개의 후보물질 중 단 1~2개만 신약으로 개발될 만큼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연구 전문성은 물론 경영진의 흔들림 없는 육성 의지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영역으로 평가받는다.

 


5. 최태원의 근황 및 모교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애정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기부는 물론이고 고려대 관련 행사에 종종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2월에는 고려대 졸업식에 참석해 축사를 한 바 있는데, 국내 대기업 총수가 대학 졸업식 연설을 하는 게 이례적이라 눈길을 끌었다. 또한 고려대학교 SK미래관 건물 건립에 사재 300억원을 출연한 것에 이어 2019년 완공 시 직접 와서 기념 식수를 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SK 하이닉스의 채용연계형 전공으로 고려대학교 반도체공학과 학부 과정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2017-18 KBL 챔피언결정전에서 SK 나이츠의 경기를 직관했고, SK가 우승하자 헹가래를 받았다.

2018년 9월에 열리는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에 경제인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하였는데, 참석한 재벌 총수들 중 유일하게 두 번 참석했다. 2000년에는 재벌 총수들 중 막내에 속했기 때문에 사진기를 들고 열심히 찍어주느라 바빴지만, 이번 방문 때도 어느 곳을 가든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인증샷을 찍는 걸 보면 사진찍는 것에 대한 취미가 있는 듯하다.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가 우승하면서 또 한 번 헹가래를 받았다.

2018년 11월에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아, 사촌형인 최윤원 고문의 자녀들, 최신원 SK 네트웍스 회장,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했다.

2019년 11월 24일, 제주 유나이티드 FC가 강등된 경기인 K리그1 37라운드 파이널 라운드 B 수원전을 직관했고, 이때 크게 분노하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팀을 다시 승격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11개월 후인 2020년 10월 24일 K리그2 25라운드 수원 FC전을 직관하고, 팀이 승격에 성공하자 남기일 감독을 직접 만나 축하하며 "제주는 왜 외국인 선수가 없느냐.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투자의 의지를 내비쳤기에 기대가 많다.

2020년 10월 26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를 조문했다.

2021년 2월 1일, 대한상의 차기 회장에 추대되었다.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사상 첫 상공회의소 수장을 맡게 된 것으로, 경영 업적, 글로벌 역량 등을 고려할 때 적임자 라는 것이 추대의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최태원 회장의 제안으로 카카오 김범수 의장과 NC 김택진 대표이사가 IT 기업인 최초로 신임 부회장단에 합류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줄어든 무료 급식소에 3개월간 도시락비 또는 도시락 지원을 한다고 한다. 매출이 하락한 영세한 식당에서 도시락을 구매하고 그 도시락을 무료 급식소에 보내는 방식이다. 최태원 "코로나 무서워도 밥은 먹어야"…40만끼 쏜다

하이닉스 성과급 논란 당시 30억원의 연봉을 반납하겠다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후 노사합의를 통해 최근 하이닉스는 임직원 상여 지급 목적으로 4885억 규모의 자사주를 처분했다.

2021년 2월, 중국 장쑤성 지역경제 발전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장쑤성에서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등을 운영하고 있는 SK그룹은 현지 인력을 무려 1만여 명이나 채용하고 있다.

2021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동행하여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3개 중점 분야에 대한 미국 투자를 확대하며 정상회담을 측면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재계와 실질적인 경제협력에 나서며 민간 외교 사절단으로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6. 최태원과 노소영의 이혼 분쟁


노태우의 딸인 노소영과 이혼 분쟁 중이다. 결혼할 당시 제2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경그룹이 내정되면서 정경유착 논란이 빚어졌다. 결국 선경그룹은 사업권을 반납하게 되지만 문민정부 때 공기업이었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게 되는데, 이 회사가 바로 지금의 SK텔레콤이다.

2015년 12월 29일, 세계일보에 서신을 보내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과 부인인 노소영과 이혼을 계획 중이라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편지 내용이 알려지며 동거인의 존재와 일방적인 이혼 통보, 동거인과의 재혼 의지 등이 화제가 되었다.

최태원은 노소영과의 이혼조정을 신청했고 양측이 조정에 실패하면서 결국 재판으로 이어졌다. 노소영은 이혼에 반대해 왔으나 2019년 12월, 이혼에 응하겠다며 맞소송을 내면서 3억원의 위자료와 최태원의 SK 보유 주식 가운데 42.29%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최태원은 2017년 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혼 조정 절차에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2018 년 7월부터 이혼 소송 절차에 돌입했다. 법조계에서는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고 재산분할 등의 사안이 복잡하기 때문에, 이혼 소송이 길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기가 노 전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남긴 메모가 발견되고 메모에 언급된 내용과 관련하여 당시 최태원이 노소영에게 생활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최태원이 가로세로연구소 등을 상대로 낸 허위 사실 유포 금지 가처분 소송 과정에서 최태원 측은 노소영에게 전달한 생활비 계좌이체 내역을 공개했다. 그 결과 매월 2000만원에 해당하는 돈을 노소영에게 부친 것으로 밝혀졌다.

2019년 5월, 최태원이 처음으로 김희영과 같이 공식 석상에 참석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최태원 SK 회장 동거인 김희영 이사장, 공식행사 첫 등장.

기사에 의하면, 5월 28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소셜 밸류 커넥트 2019’의 마지막 세션에 두 사람이 참석했는데, 두 사람이 함께 설립한 "티앤씨재단"이 이 행사의 파트너사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티앤씨재단(T&C Foundation)은 바로 전해인 2018년에 최태원과 김희영이 인재양성을 위하여 공동 설립한 재단이다. 티앤씨재단 홈페이지를 보면 심볼은 설립자들 이름 앞글자를 따서 T와 C를 형상화 했다고 나와있다.

동거인 김희영은 1975년 11월 생이며 미국 시민권자로 1975년생으로 서울 리라초등학교를 졸업해 17세 때인 1992년 일리노이주로 이민간 것으로 추정된다. 일리노이주의 어느 도시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아마도 시카고 인근으로 보이며, 그 이후 중국으로 유학을 가 베이징의 중앙미술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5월 태어난 아들을 두고 있으며, 2008년 6월 뉴저지 주 패세익 카운티 가정 법원에 남편을 상대로 이혼 판결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5. SK 그룹의 가계도, 최태원 가족 및 기타 논란


이글루스에 최태원 회장님의 인터넷 생활이라는 포스팅이 올라왔는데, 실제 본인일지는 미심쩍다. 내용을 자세히 보면 상당 부분 알려진 팩트와 다른 내용이 많아 사칭이라는 의견이 우세한 편이다.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을 맡고 있지만, 실제로 본인이 정작 가장 관심을 두는 스포츠 종목은 농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같은 그룹의 야구단을 응원하는 일부 팬들은 "농구단에 쏟아부을 돈 있으면 야구단에도 좀 부어줘라!"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SK 와이번스는 신세계 그룹에 매각 되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삼성 등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18개 그룹이 출연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기금 및 추가 후원금에 대한 수사가 이어졌다.하지만 검찰은 재단 설립 기금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의 직권남용 및 강요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해당 기업들을 직권남용·강요의 '피해자'로 본 것이다. 기존 출연금 외에 추가 후원금을 건넸는지 여부에 대해 롯데와 SK가 수사 선상에 올랐으나, 롯데는 뇌물 공여 혐의로 불구속 된 데 반해, 실제로 돈을 건네지 않은 SK는 무혐의로 처리됐다. SK는 최순실 씨로부터 89억 원을 추가로 내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이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면세점 재승인 심사 결과 오히려 워커힐의 사업권을 잃었고, CJ헬로비전 인수는 공정위의 불허 결정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2021년 7월 한 네티즌이 최태원 인스타에 '요플레 뚜껑을 핥아먹느냐'는 질문을 하자, '그렇다'는 답을 해서 화제가 되었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도 한때 구치소에서 풀려난 후 배달 치킨을 시켜먹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미지 정치를 시작하신 회장님.


최태원은 취임 후 20년만에 재계 5위에서 2위를 넘볼만큼 자산 규모를 늘렸다. 최태원은 이러한 성장은 자신의 경영 능력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 가능했다며 2018년 친족들에게 지분을 증여했다. 여동생인 최기원도 보유 주식의 일정 부분을 증여하며 동참했다. 현재 SK의 지분은 최태원, 최기원, 남동생인 최재원 순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

2020년 9월 21일, 2014년 미국 브라운대에 입학해 물리학을 전공한 장남 최인근이 SK그룹의 에너지 계열사인 SK E&S 전략기획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녀 최윤정은 SK바이오팜 책임매니저로 일하다가 2019년 휴직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바이오인포매틱스(생명정보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예비역 중위로 전역한 차녀 최민정은 2019년 SK그룹 주력계열사인 SK하이닉스에 대리급으로 입사했다. 2021년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각하 판결과 관련해 자신의 SNS에 ‘great news!’라는 글을 적어 엄청 욕을 먹게 되었고...

2020년에는 두 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