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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노무현, 박근혜 탄핵의 주역 추미애의 일생

by @#$*&! 2020.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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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박근혜 탄핵의 주역 추미애의 일생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장관. 대한민국의 제15·16·18·19·20대 국회의원과 2016~2018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하였다.

특이한 사항은 두번의 대한민국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모두 주역이었다. 그 덕에 탄핵요정 추미애라는 별명도 생겼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법원에서 10여 년간 판사로 일했고, 1995년 김대중에 스카웃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간주하고 규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정작 추미애 본인은 서울 광진구 구의동 아파트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오피스텔을 보유한 다주택자이다.

1. 학력, 소속정당, 선거이력

          1971 대구남산초등학교 졸업

          1974 구남여자중학교 졸업

          1977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1981 한양대학교 법학 학사

          1983 한양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과정 수료

          2004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경제학 석사

          2013 건국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과정 수료

소속정당

선거이력

 

2. 생애

1958년 경상북도 달성군(1995년 대구광역시로 편입)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 2녀 중 셋째이자 차녀로 태어났다. 3살 무렵에 부모가 운영하는 세탁소에 도둑이 들었서 재산도 줄어들고, 마침 이때 막내동생이 태어나고 언니도 눈병에 걸려 살림이 굉장히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3살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외갓집에 맡겨져 컸다고 한다. 이러한 성장 배경이 강한 '독립심' '반항적 기질', '기득권에 대한 분노'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대구남산초등학교, 구남여자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후회없는 삶을 살겠다"며 한양대학교 법정대학에 진학했다. 재수 끝에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85, 같은 대학의 캠퍼스 커플이던 서성환 변호사와 7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하여 법조인 부부로 이름을 알렸다. 추미애는 1982년 사법시험 합격 후 여기저기서 혼처를 제안받았으나, 서성환이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결혼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 서성환이 전라북도 정읍 출신인 점이 걸림돌이었다. 당시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이 극심했던 때라 양쪽 지역 출신 사이의 결혼을 선뜻 승낙받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서성환은 고등학생 때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그러나 추미애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결혼 승낙을 받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언론에서는 추미애를 가리켜, 그리고 추미애 스스로도 '대구의 딸, 호남의 며느리'라고 부른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추미애를 정계에 영입한 이후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슬하에는 3명의 자녀가 있다.

정계 입문 전에는 춘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서 일했다. 판사 시절에도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 없는, 당돌하고 대차지만 자기 중심적이며 반항적인 성격을 곳곳에서 유감 없이 드러냈다고 한다. 

이는 춘천지방법원에 처음 발령받을 때부터 법원 내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역시 판사 출신에 사법연수원 1년 선배인 신평 전 경북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추미애가 1985년에 초임지를 지방(춘천)으로 발령받은 것에 분개하여 법원행정처에 가서 펑펑 울면서 여자를 지방으로 발령한 것은 부당하다며 항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는 지방이라는 이유로 조직에서 배정한 임지에 대해 불만을 하소연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던 시절이라 이런 행동에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몹시 격앙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추미애는 그런 일이 없었으며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결국 신평은 자신의 발언으로 추미애에게 상처를 준데 대해 사과하며 한 발 물러섰으나 너무 강렬한 기억이었다며 그런 전언을 들은 것까지는 부정하지 않았다.

또한 춘천지방법원에 부임한 때는 아직 서슬 퍼런 전두환 군부 독재 정권 시기였는데, 추미애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

- 1985년 봄, 전두환 정권은 오늘날에는 명작으로 평가 받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100권이 넘는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하고 관련된 출판사 및 서점 등을 압수수색하였다. 전국 검찰에선 일제히 영장을 청구했고, 전국 법원은 예외 없이 영장을 발부했다. 그 때 춘천지방법원에서 초임 판사로 일하던 추미애에게도 불온서적 유통 혐의를 받던 춘천의 가장 큰 서점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영장이 청구되었다. 그러나 추미애는 부당한 청구라며 영장을 기각하였다. 전국에서 유일한 영장 기각이었다. 이후 법원장은 추미애를 호출해서 당신, 김대중 정치 운동하는 판사냐?”며 비아냥대듯 야단쳤다고 한다. 훗날 추미애는 이 사건에 대해 "독재 정권이 저지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같은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날 밤을 새우며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만 해도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는 금기와 편견의 상징이었고, 불온의 대명사였다. 그렇게 저에게 김대중의 이름이 씌워졌지만 그 분과는 생면부지였다. 실제로 인연이 맺어진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에 우연히 찾아왔다."고 회고하였다.

- 이외에도 수사 당국이 여러 공안 사건에서 구속영장을 남발해도 법적으로 용납이 안 되면 각해버렸다. 한 번은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며 경찰서장이 한밤 중에 추미애에게 전화를 걸어와 내일 다시 신청할 테니 꼭 발부해달라며 신경질을 낸 일이 있었다. 추미애가 영장청구권자는 검사인데 서장께서 왜 직접 전화를 하는가? 판사가 한번 결정해 외부로 나간 일은 번복할 수 없다라고 응수했는데 다음 날 법원장이 불러 아버지 같은 경찰서장에게 도대체 뭐라 했길래 서장이 그리 화가 난 것이냐라며 질책했다. 추미애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검찰 쪽으로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경찰서장이 찾아와 사과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고 한다.

이런 추미애를 주목한 것이 김대중이었다. 추미애가 판사 10년차이던 1995, 김대중은 정계 복귀를 위해 신당(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준비하며 386세대 젊은 인재 영입 작업을 벌이던 중이었다. 결국 추미애는 1995 8월 김대중의 영입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법원에 사직서를 내고 정계에 입문한다.

2. 노무현 탄핵 사건

추미애는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 분당사태 때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에 잔류하며 노무현과 정치적으로 결별하였다. 이후 국회에서 노무현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개시되었다. 곧이어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추미애에게 맡겼는데 추미애는 탄핵 반대 여론을 체감하고 탄핵에 동참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31배를 하였다. 그러나 탄핵반대 여론의 역풍을 맞은 민주당은 9석의 의석을 얻는데 그쳤고 이때 추미애 본인도 낙선하였다. 훗날 추미애는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이자 과오가 탄핵에 찬성한 것이라고 했다.

3. 박근혜 탄핵사건

 

4. 추미애가 정신병

김삿갓이 쓴 시 중 음을 읽으면 추미애에 대한 욕인 것처럼 된 한시가 있던 것으로 알려져 '추미애가'로 알려져 있으나 이런 시가 있었다는것은 사실이 아니다.

秋美哀歌靜晨竝 추미애가정신병

雅霧來到迷親然 아무래도미친연

凱發小發皆雙然 개발소발개쌍연

愛悲哀美竹一然 애비애미죽일연

우아한 안개가 홀연히 드리운다

기세 좋은 것이나 소박한 것이나 모두가 자연이라

가을 날 곱고 애잔한 노래가 황혼에 고요히 퍼지니

사랑은 슬프며 애잔함은 아름다우니 하나로 연연(連延)하다.

5. 정동영 후보 공동선대위원장 활동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다음 해 실시된 18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복귀하였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고, 같은 해 실시된 제18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국민통합위원장으로도 활동하였다. 2015년에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의해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되었다. 한편 같은 해 말에 벌어진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사태 때는 탈당파를 강력히 비판하며 당에 잔류하였다.

2016 4월에 실시된 제20대 총선에서 당선됨으로써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 지역구 5선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6 8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어 민주당 역사상 최초의 대구·경북 출신 당 대표가 되었다. 2017 5월 실시된 제19대 대선에서 당 대표로서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이로써 헌정 사상 첫 여성 집권 여당 대표가 되었다.

2020 1 2일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6. 논란

- 공직선거법 위반

2016 12 23일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11(이상윤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유포) 혐의를 받은 추미애에 대해 "미필적으로나마 허위임을 인식하면서 해당 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보인다"며 유죄를 인정하면서 "추 대표가 법조단지 존치 약속을 자신의 중요한 업적으로 강조해 홍보한 것은 아니고 정치적 책임에 대해서는 이후 두 차례 선거에서 이미 심판을 받았고 지지율 추이를 보면 선거에 영향을 준 건 아니다"고 하여 당선을 무효로는 하지 않는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 '문재앙 댓글은 범죄' 발언

"익명의 그늘에 숨어 대통령을재앙으로 부르고 (문 대통령) 지지자를 농락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대표적인 포털 네이버의 댓글이 인신공격, 비하와 혐오, 욕설의 난장판이 됐다"고 지적했다.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가 생산, 유포되고 있다", "준비된 듯한 댓글 조작단이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악의적 프로세스도 진행된다"면서 "네이버는 이런 행위가 범람하고 있지만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데 묵인과 방조도 공범"이라며 포털의 책임을 지적했다.

그러나 공인을 향한명예훼손의 경우 표현의 자유가 비교적 폭 넓게 보장 받아야 한다는 게 학계의 보편적 견해이자 과거 민주당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 때 쥐박이라 하고, 박근혜 대통령 때 닭근혜라 했지만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과거 한나라당 시절 이회창 총재에 대해서도 이회충을 비롯한 온갖 인신공격성 댓글이 오갔다. 10년간 그런 댓글은 방치해 놓고 이제 와 최고존엄을 모독한다고 고소·고발 한다는 걸 보고 이 나라가 자유대한민국인지 북한을 따라가는지 분간하기 어렵다"고 비판하였다.

- 계엄령 발언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하야하시라.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으면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정지시키는 조치에 착착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계엄령까지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돈다"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 정진석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권한이 있다면 국회는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헌법은 국회의원 과반수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고 77조에 못 박고 있다"라면서 "여소야대 국면에서 계엄해제권은 추미애 대표가 쥐고 있다. 계엄선포권은 박 대통령에게 있지만, 계엄해제권은 추 대표에게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  상임위 불출석

지난 1년 국회 상임위원회(추 대표의 소속 위원회는 외교통일위원회)에 추 대표는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법률소비자연맹이 발표한 국회 상임위원회 전체회의 전수조사 결과, 역대 여야 당대표들의 출석률은 다 저조하지만, 추 대표처럼 0%인 경우는 단 한번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당 대표들은 일정도 많고, 특히 추 대표처럼 지난 1년 동안 대선, 지방선거 등을 준비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정의당 이정미 대표의 상임위 출석률인 66%와 비교된다고 JTBC 정치부 회의가 지적했다.

공소장 비공개 관련 논란

추미애는 2020. 2. 6. 문재인 정부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동안 사실상 간과되어 왔던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공판중심주의, 공소장일본주의가 실질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그동안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하면서 "미국도 재판 시작 전에는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는다" "재판이 시작되면 공개될 것"이라고 해명을 했지만 "미국은 기소하면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이틀 내에 공소장을 공개하였다."는 반론이 있었다.

법무부 장관 해임 청원

2020 2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 해임" "3대 수사팀 해체 반대"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1 6일부터 1개월 동안 34 5천명, 2 6일부터 33 5천여명이 동의하는 서명을 했다. 이에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 강정수가 "공정성에 문제 없다"는 답변을 했다.

-  아들 탈영 논란

2016~2018년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 미2사단지역대 소속 카투사로 군 복무했던 추미애의 아들이 "아프다"면서 휴가 10일을 받고 다시 10일 추가 신청했으나 불허되었음에도 지정된 날짜에 복귀하지 않아 탈영 논란으로 검찰에 고발되었다. 이후 아들의 동료 병사가 SNS "우리 엄마가 추미애 장관이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적어 다시 논란이 생기자 추미애는 국회에서 "더 이상 아들을 건드리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다시 논란이 생겼다.

당시 휴가 20일째 되는 날 당직 사병은 검찰에서 "이를 상부에 보고도 하기 전에 먼저 상급 부대에서 '휴가 연장' 지시가 내려왔다" "내가 복무하는 기간에 휴가 미복귀하고 연장되는 사병은 서씨가 처음'이라고 말해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 수사지휘권 남용 논란

채널A사건, 옵티머스 자산운용 정관계 로비의혹 사건과 관련하여 법적 정당성이 없이 검찰총장을 수사에서 배제하는 지휘를 연속으로 내려 논란이 일었다.

자의적 피의사실 공표 논란

야당 의원들 및 법조계 일부에게 검찰수사의 피의사실 공표 금지 원칙을 자의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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