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전의원의 일생, 장점, 비판및 논란
대한민국의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다. 전직 4선 국회의원이고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고 박원순 전서울시장에 패해 낙선했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에 출마, 당선되고 20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서 4선에 성공했다. 20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21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의 이수진에게 패해 5선에 실패하였다.
이후엔 당내에서 유력한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여론조사에서 계속 선전 중이다.
1. 나경원 전의원의 생애
1963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노량진동(현재의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흥신학원 이사장 나채성의 장녀로 태어났다. 계성초등학교, 숭의여자중학교, 서울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제법학 박사 과정도 수료하였다. 그리고 만 29세이던 1992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1995. 03. ~ 1999. 02. 부산지방법원, 1999. 03. ~ 2002. 02. 인천지방법원, 2002. 02. ~ 2002. 09. 서울행정법원에서 판사로 재직했다.
2004년의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진출했다. 3년 후인 2007년의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그의 당선에 기여했고,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난히 당선되면서 유력한 여성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1년 전보다 구체적으로는 후술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전까지는 차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기도 했을 정도.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 최고위원 회의에서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을 당에서 총력으로 지원하여야 한다"고 하였다가 유승민 최고위원에게 반박당하였다.
2.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와 정치적 침체
2011년 후반기 서울특별시의 무상급식 논란과 이를 둘러싼 주민투표가 무산된 과정에서 여당 소속의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자진 사퇴하여 실시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선거에서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53.4%의 득표율을 얻어(2,158,476표),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7%p 가까이 되는 득표율로 누르고 압승하면서 제35대 서울시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상대측인 박원순 후보측에서 제기한 '호화 피부시술' 의혹, 2004년 일본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나경원 전의원이 일본의 앞잡이라며 악의적 공격을 하였고 나경원이 이완용 땅 찾아주기에 앞장섰다는등 악의적인 루머가 퍼졌다. 루머를 퍼트린 사람은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벌금형에 그쳤으며 나경원 전의원은 이미지에 큰피해를 보았다. 나는꼼수다측의 가장 많은 공격을 받는 정치인중의 한명이 됐다. 그 결과 최초의 민선 여성 광역단체장이라는 타이틀을 본인이 기록하지 못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결국 이듬해인 2012년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는 출마조차 못했고, 한동안 정치권에서 멀어져야 했다.
3. 재기: 2014년 재보궐선거 당선
3년 후인 2014년 7월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지역구에 한나라당의 후신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정의당의 노회찬을 상대로 단 929표 (1.3%) 차의 신승을 거두어 당선,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이로써 17~19대 연속으로 3선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해양수산부장관으로 입각한 유기준의 뒤를 이어 19대 국회 후반기의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4. 2016년: 4선에 성공
2016년 4월의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 지역구는 현재 19대 국회에서와 같은 동작 을이며, '할 수 있습니다. 나경원이니까', '강남4구동작 나경원', '동작 사람이 억울하면 나경원이 못 참습니다'의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리고 2016년 3월 12일, 새누리당 공천관리위로부터 '동작 을' 후보로 공천받았고 선거결과 약 43%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2016년 5월 3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정책위원회 의장 후보인 4선의 김재경과 러닝메이트로 출마하였으나 정진석-김광림 조에 밀려 패하였다. 하지만 이로써 당내 비주류의 대표로서 자리매김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영향을 받아 새누리당 인재영입위원장을 사퇴한다. 그리고 2016년 11월 14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련해 당내 친박진영에 맞서 비상시국위원회를 결성하였다.
5. 2016년 지도부 선거 패배
2016년 12월 16일 대통령 탄핵 사태로 중도성향인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광림 정책위원회 의장이 사퇴하자 또 다시 원내대표직에 출마했지만, 친박성향인 정우택-이현재 조에 밀려 또 패하였다.
새누리당과 보수 측에 크나큰 후폭풍을 불러온 패배였는데 비박 측의 적극적인 푸쉬를 받았음에도 나경원이 새누리당 지도부 선거에서 패배하여 원내대표직에 선출되는 데 실패하고 친박이 새누리당의 주도권 수성에 성공하게 되자 결국 비박 측은 친박이 주도권을 장악한 새누리당과 인연을 점차 끊고 자신들끼리 뭉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경원이 선거에서 패배한 지 2주도 되지 않아서 본격적으로 탈당하기 시작한다.
이후 2016년 12월 27일 비박계 29명 의원이 탈당하는 와중에 비박계 의원들과 정강정책등 노선의 갈등이 있어 보류 선언을 했다. 나경원의 탈당 보류를 바른정당에서 자신의 지분을 얻기 위해 탈당을 보류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바른정당이 내세운 경제정책에 있어 진보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하는것은 나경원과는 애초부터 맞지 않았다. 보수의 패배로 인하여 보수가 크게 분열된 와중에 자신의 이득을 얻는것을 고집한다고 비난한 사람들이 있으나 애초부터 탈당하여 바른정당을 창당하고 "경제정책은 사회주의", "안보는 친미" 를 추구하는 정당을 세운다는것 자체가 보수 내부의 분열을 일으키는 일이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진보 사회주의 지지자들은 유승민 바른정당계열과 안철수 계열을 지지하지만 투표장에서는 민주당이나 정의당에게 투표하기 때문에 보수를 표방하며 사회주의 경제 정책을 추구하는것은 표를 얻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나경원에 대한 보수 지지자들의 지지는 매우 공고하다. 보수 내부에서 나경원에 대한 비판은 실제로는 보수 내부가 아니라 보수를 부정하고 증세와 규제 강화를 주장하며 "경제민주화", "탈보수", "사회적경제", "증세와 규제강화" 를 선언한 김종인, 유승민, 안철수 지지자들이 싫어할 뿐이다.
6. 초중고 교재 국정감사
교육문화위원회 소속으로 국정감사에서 일선 초·중·고에 올해 1~10월 실시한 특정 주제 관련 수업 사례, 교재와 지도안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자료 제출을 요구한 주제는 사드 배치, 탈핵·탈원전, 5·1 노동절, 5·18 민주화운동, 6·15 남북공동선언, 19대 대선 혹은 공직선거법이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길들이려 하는것이라며 교원단체에서 크게 반발하였다.
하지만 초,중,고등학교 교재가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인것은 충분히 문제제기를 할만한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2018년 12월에는 친박계의 지지를 받아 원내대표에 당선되었다. 나경원 의원이 친박계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을 생각하면 신기한 상황이다.
7.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하였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단식 중인 야 3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무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결국 범여권에 속하는 민주당 및 정의당, 바른미래당에서 내놓은 패스트트랙 등 4개 법안의 제출을 막았다가 검찰에 고발당한 18명의 의원 중 한 명이 되었다.
2019년 7월 4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진행하였다. "기업들은 비관에 빠져있고 정치 불안은 거의 공포 수준으로 대통령이 나서 국민을 쪼개고 가른다"고 현 시국과 대통령의 태도를 비판했다. 이어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가 오히려 독재 수단으로 오용되고, 독재자가 선거를 악용해 득세한 사례를 우리는 역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문재인 정권 역시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이 아닌 이 정권의 절대권력 완성을 위해 민주주의를 악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2019년 7월 23~24일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는 면담 일정을 잡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장관, 정경두 국방부장관 등 정부 인사들보다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먼저 만났다. 여당 원내대표와 정부 인사들을 제치고 야당 원내대표를 먼저 만난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볼턴 보좌관과 나 원내대표는 24일 오전 8시에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면담을 가졌고 이후 나경원 원내대표는 "안보와 관련된 한국당의 입장을 (볼턴 보좌관에게)충분히 전달했다"며 "중국과 러시아의 KADIZ 영공을 침범한 엄중한 안보 현실에 있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자평했다.
2019년 12월 3일 황교안이 소집한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방적으로 나경원을 쫓아냄으로써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황교안의 그런 결정은 총선을 앞두고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지만 황교안은 나경원을 쫓아내고 "경제민주화"로 대변되는 사회주의 노선을 주장하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영입하였다. 그 결과 총선에서 크게 패배하였고 황교안 본인의 정치생명이 끝난것 뿐만 아니라 자유한국당 역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총선에 패배하였지만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물러나지 않고 정당의 이름까지 "국민의힘" 으로 바꾸면서 경제는 "진보 사회주의" 를 주장하는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로 채우고 정강정책도 사회주의 노선으로 선회함으로 인해 국민의힘은 사회주의 정당으로 탈바꿈 하게 되었다.
8. 5선 도전과 낙선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원 지역구인 동작구 을에 다시 공천되었으나 낙선하였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대진연의 선거 운동 방해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9. 낙선 이후
남성역 스타벅스 건물 4층에서 동쪽으로 약 100미터 떨어진 동태탕집 3층으로 사무실을 이전했고, 이곳에 '나경원의 즐거운 정치·법률 교실'을 차려 법률상담을 하면서 의견을 듣기로 했다. 나 전 의원은 "우리 모두의 삶을 즐겁게 해 줄 정치, 법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2020년 7월 9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자살로 궐위가 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자로 거론되고 있다.
2020년 9월 21일 패스트 트랙 충돌 사건의 첫 재판에 참석했다. 여당 횡포에 저항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고 "원내대표로 선출돼 제1야당을 이끌어왔으니, 2019년 4월에 있던 모든 일(패스트트랙 사태)의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도 말했다.
2020년 10월 8일 여당인사들의 끊임없는 공격으로 인해 페이스북에 야당 정치인을 탄압말라며 원하면 국정감사에 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그 외에도 낙선 후 뜸하던 페이스북에 아들과 딸 관련한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문을 내고 있다.
2020년 10월 19일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했다. 11월 초에 자신의 원내대표 행적을 돌아보는 자서전을 출간할 예정이며 서울시장·당대표·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원정출산 의혹이 있던 아들은 입대하였다.
2020년 11월 13일 김종민,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에서 나경원, 윤석렬 수사에 대해 '조국 전 장관과 같은 잣대로 수사하라', '관련 영장이 통째로 기각됐다'며 두 사람을 비판하자 페이스북에 조국 일가의 혐의들을 나열하며 자신과 자신의 가족은 조국 일가처럼 살지 않았다는 내용의 반박문을 냈다.
현재 책을 출판하고 sns 활동을 재개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서울시장 출마 등의 정계 복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후보 적합도 2 위를 차지하여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상당히 하락한 서울에서 당선될 확률도 적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 내 유력 서울시장 후보로 꼽히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에게도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였던 나경원이지만 2020년 12월 20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 선언을 하며 의외의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상 출마에 무게를 두고 시기를 검토 중이던 나경원 전 의원은 안철수의 출마 선언에 "흥미로운 전개"라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10. 평가
4선 의원으로 명실상부한 보수 진영의 대표적 중진 정치인이다.
진영별로 호불호가 크게 엇갈린다. 진보 사회주의 지지자들에게는 이미지가 나쁘다. 반면 보수 자유주의 진영측에서는 본인의 미모와 함께 다른 여당 정치인들이 발언하기를 꺼리는 주제의 비판을 거리낌없이 하는 등, 가려운 곳을 시원시원하게 긁어주는 사이다 발언을 자주 하기 때문에 공고한 지지를 보인다.
달창발언으로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문재인 지지자들은 예전부터 나경원을 비난했기 때문에 나경원이 달창발언을 하든 안하든 어차피 지지해줄 사람들은 아니다.
나경원의 장점으로는 일단 압도적인 전국적인 인지도 및 주목도가 꼽힌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를 계기로 인지도가 높아졌고, 여성 유력인사 및 거물이 그나마 몇 명 있는 여권(민주당 계열)에 비해서 보수 자유주의 진영에서의 거의 유일한 유력 여성 거물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장년층 및 보수 자유주의 진영에서의 인기는 매우 높다. 그리고 수도권에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단점은 유명세만큼이나 비호감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진보 사회주의 진영은 물론이고 보수층 중에도 경제민주화와 친중 사회주의 계열의 색깔을 가졌던 친박에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상당하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와 친중을 하는 정치인들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보수였나?
보수 자유주의 진영의 가려운 부위를 긁어주는 시원한 발언은 발언의 수위가 높다 보니 반대 정당의 입장에서는 불구대천으로 보일 수밖에 없고 '불쌍하다'는 이미지가 전혀 없다. 엄친딸, 상류층, 귀족 이미지가 지나치게 짙다는 점도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써는 약점이다.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의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서민 이미지를 앞세운 박원순에게 7.2% 차이로 패배한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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